[발언대]北일가 탈출에 대한 기쁨과 우려

  • 입력 1996년 12월 16일 19시 56분


김경호씨 일가의 탈출에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보낸다.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가 17명이 생명을 담보로 엄청난 모험을 치렀다. 파란만장한 여정 끝에 마침내 신변의 안전과 기아로부터의 해방을 얻게 됐다. 당연히 우리 모두 기뻐할만한 일이다. 언론이 온통 이들 일가에 관한 보도에 매달릴만도 하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그저 축하하고 기뻐할 내용 뿐인지, 혹시 반성해야 할 다른 측면은 없는지. 김씨일가가 살던 북한의 고장에서 서울까지는 요즘의 교통수단으로 하루에 왕복도 가능한 거리다. 그런데 이들은 장장 44일에 걸쳐 4천㎞를 돌아와야 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정치적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북한 동포들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동안 남한에서는 남아서 버리는 음식물쓰레기가 환경오염의 원인으로 문제되는 상황이었다. 이번 김씨일가의 탈출도 우리의 무능력을 심각하게 반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들 일가의 탈출은 물론 극적이며 다행스럽다. 하지만 해결된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견디기 어려운 극한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출하려는 수천 수만, 어쩌면 수십만명의 북한난민들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김씨일가의 무사탈출을 기뻐하며 축제를 벌이기 전에 북한에 남아 있는 수많은 잠재적 탈주민들의 안위를 먼저 걱정해야 하지 않았는지, 혹시 모두들 들떠서 말의 성찬을 즐긴 이면에는 북한에 대한 우월감이나 잠수함사건에 대한 보복심리는 없었는지, 우리가 진정 북한동포들의 어려움을 생각했다면 조용히 덮어두고 1,2년 후에나 가서 일반에 알리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지 않았는지. 그런데 이들 일가의 신원은 물론 탈출조직과 경로 및 도중의 비밀불법통로, 심지어 중국인 공안원 매수비용까지도 상세히 공개했다. 결국 다른 탈북자들은 앞으로 이런 수단을 이용할 수 없거나 힘들게 된다는 의미가 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탈출에 도움을 준 중국 홍콩의 당국자들을 매우 곤란하게 했다. 더구나 뒤에 남겨둔 이들의 친척 친지들은 어떨까. 우리가 떠들썩한 축제판을 벌이는 만큼 남아 있는 이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가해지지 않겠는가. 우리는 다시한번 자문해봐야 한다. 마치 반세기 전의 8.15때처럼 반성해야 하는 계기에 축하판부터 벌이는건 아닌가. 우리는 진정 어려움에 처한 동족에 대한 배려로 기뻐하는가. 아니면 속된 말로 북한 당국자들을 한방 먹였기에 좋아하는가. 나 종 일<경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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