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조개와 황새」

  • 입력 1996년 12월 5일 20시 12분


우리가 세계화정책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세계화현상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가 별로 없음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도 「신발을 신은 채 가려운 발을 긁는 모습」(격화소양)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보화와 교통통신의 발달이 가속화되고 소량다품종 생산체제가 확산되면서 세계의 주요 기업들이 지구의 방방곡곡에 진출하여 투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세계화현상이다. 이러한 기업들을 받아들이는 나라는 기술의 이전과 산업의 발전 그리고 고용과 부가가치의 창출이라는 혜택을 통해 좀 더 높은 경제성장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자본과 기업을 유치하고 이것이 바로 세계화를 가속시키기도 한다. ▼우려되는 「노동법 갈등」▼ 갈수록 경쟁이 격화되면서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대외개방을 과감히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각국의 각종 규제정책이 서로 닮은 꼴이 되어가고 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 격으로 기업활동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더 억제적인 규제체제는 자본과 기업을 유치하기는커녕 자본과 기업의 이탈을 가져오고 이로 인해 그 나라 경제의 경쟁력이 약화된다. 따라서 각국의 규제체제가 기업의 경영활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편되지 않고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지나치게 친기업적인 규제는 환경을 훼손한다든지, 소득분배 내지는 경제정의를 약화시켜 노사협력을 저해한다든지 하여 결국은 자본과 기업의 이탈을 초래하고 경제의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기업측에만 영합하는 규제체제도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세계각국이 경제의 기복을 겪어가는 가운데 규제체제를 개선시켜 나가다 보면 궁극적으로는 상호 유사한 규범으로 구성되는 규제체제를 갖추게 된다. 이것이 세계화의 중요한 한 측면이다. 이와같은 추세하에서 각국 경제의 경쟁력은 얼마나 능동적으로 자국의 규제체제를 가장 경쟁력있는 나라의 수준으로 수렴시켜 가느냐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경제개혁 바람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경제개혁을 거부했던 사회주의국가들은 아주 붕괴해버리고 말았다. 반면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해 오던 유럽국가들은 아예 각국의 각종 규제를 완화함과 동시에 한가지 체제로 통일해버리는 「단일시장화」를 단행하고 말았다. 세계적으로 규제체제의 주요 핵심중 하나가 노동법이다. 지금 노동법개정안의 내용을 두고 노동계와 재계가 모두 상반된 이유로 심각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그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어려운 터에 설상가상으로 총파업마저 위협되고 있다. ▼노-사 한발짝씩 물러서자▼ 기본적으로 양측이 이미 기득권으로 누려왔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인 듯하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정리해고제의 배제, 복수노조의 금지 등 대체로 한국특유의 규정들이다. 말하자면 제나름으로 각기 한국특유의 모델을 고집하는 셈이다.모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각자 우물안에 앉아 어제와 비교해 득실만 따지지 말고 양측 공통의 국가적 현실을 세계화시대의 국제적 현실과 비교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쪽이 무조건 양보할 일도 아니다. 국제적 합리성을 추구해야 한다. 조개와 황새가 서로 싸우다가 조개가 황새의 부리를 꽉 문 채로 둘 다 어부에게 잡혔다는 우화를 깊이 음미해보자. 노사간의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국가의 경쟁력은 계속 약화되어가지 않겠는가. 양 수 길<교통개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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