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가족 17명의 집단脫北

  • 입력 1996년 12월 5일 20시 12분


김경호씨 일가 17명의 집단 북한탈출 소식은 충격적이다. 그동안 김만철 여만철씨를 비롯, 가족단위 탈북(脫北)은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아들 딸 사위 며느리와 어린 손자 손녀까지 17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그것도 사회안전부 안전원 1명과 함께 북녘땅을 탈출해 나온 것은 일찍이 없던 일이다. 그토록 우려해온 북한주민들의 대량 탈북사태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신호인가. 본보 단독보도에 따르면 이들 일가가 건넌 두만강은 강물이 많이 줄어 탈출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강화된 국경경비대의 눈을 피해가며 대가족이 한꺼번에 국경을 넘기는 목숨을 건 대모험이었을 것이다. 이들 말고도 91년 이후 탈북 귀순한 북한동포는 1백40여명에 이르고 탈출 후 제삼국에 체류중인 북한주민이 2천명 이상일 것으로 정보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이처럼 목숨 건 엑서더스의 길로 내모는가.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식량난과 체제이완(弛緩), 갈수록 심해지는 주민탄압이 복합적으로 겹친 결과일 것이다. 해마다 홍수가 겹치면서 북한의 식량사정은 올 겨울과 내년 봄 최악의 상황에 이를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작년 이후 이미 1천여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보고도 있다. 북한은 최근 국경지대에 탈북사태가 잇따르자 「제10군단」을 별도로 창설 배치했으나 급속도로 번지는 체제이완현상과 주민통제력 약화로 속수무책이라고 한다. 백성이 굶주리면 나라가 망했던 것이 동서고금의 역사다. 갈수록 처참해지는 삶의 여건속에 될대로 되라는 심리적 동요와 자포자기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절망의 땅을 등지는 이탈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 겨울 압록강과 두만강이 얼어붙으면 엄청난 집단탈출 사태가 일지도 모른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강압적이고 부도덕한 정권아래서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이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들의 부담일 수밖에 없다. 북한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한반도 안보는 물론 우리 국민의 일상생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는 바로 우리에게도 발등의 불이다. 기존의 대북(對北)정책, 특히 대량탈북사태에 따른 대비책을 시급히 재점검하고 가다듬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북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모든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말기증세를 보이고 있는 평양정권으로서는 체제위기와 내부불안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더욱 호전적 대남(對南)전략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극단적 모험주의로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특히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 북한이 저지를 수 있는 여러 가능성에 대비하여 단호하고 냉철하게 대비책을 세우고 한치의 틈도 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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