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판사협박 안될 일

  • 입력 1996년 11월 27일 20시 04분


탤런트 신은경씨를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한 판사와 그 가족이 연일 협박전화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는 매우 충격적이다. 판사의 석방결정이 신씨의 무거운 혐의에 비추어 일반 국민의 법감정과 지금까지의 법집행 관행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재판도 하기전에 구속은 마치 「유죄」, 불구속은 「무죄」처럼 인식해온 많은 국민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것은 이해한다. 특히 비슷한 혐의로 구속재판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나 교통사고 피해자, 음주운전을 엄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법은 힘있는 자만을 보호한다고 믿는 사람 등의 평소 정의감에 반(反)하는 것도 충분히 알만하다. 판사는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가 없다」는 점만을 석방이유로 삼았고 보도된 것처럼 「열심히 살아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지만 이 대목이 여론을 격앙시킨 계기가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재판이 항상 완벽할 수는 없다. 따라서 판사의 판결이나 결정에는 논란과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사법부도 건전한 비판에 대해서는 늘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몰지각한 협박을 하게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헌법과 법률, 법관의 양심에 따른 독립적 재판을 위협하는 언어의 폭력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폭력을 쓴다면 민주주의의 근간(根幹)은 무너지고 만다. 더욱이 전화 뒤에서 얼굴을 감추고 협박을 하는 행위는 비열한 짓이다. 이번 사건은 내년부터 인권보호를 위해 형사소송의 불구속원칙을 실현하려는 구속영장 실질심사제 시행을 앞두고 벌어진 전환기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사법부에 대한 그동안의 깊은 불신을 반증한 것이기도 하다. 유명인에 대한 재판에 있어서는 그들의 인기를 구실로 혹시라도 특별한 배려를 해서는 안된다. 무면허 음주운전 뺑소니같은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범죄는 누구든 엄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래야만 형사소송의 불구속원칙이 관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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