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219)

  • 입력 1996년 11월 20일 20시 17분


나에 대한 타당한 오해들〈26〉 술을 단숨에 털어넣은 다음 다시 병을 기울이는 종태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착잡함이 느껴진다. 『집사람 신경이 너무 날카로워졌어. 며칠 전에는 정신과까지 갔었던 모양이야. 신경애씨가 혹시 말 안 해? 신경애씨가 다닌 적 있는 병원을 소개해 줬다고 하더라구』 나는 눈을 깜박거린다. 경애가 정신과에?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몰랐어? 신경애씨 말야, 주식하고 뭐 그런 거 하다가 큰 손해 봤을걸? 집사람 말로는 일이 터진 다음에야 남편이 알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하던데』 윤선이 일로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못 보던 반지를 끼고 있었던 경애. 나이가 들수록 사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던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이 두렵다고? 하지만 그 뒤로도 두어 번 더 만난 적이 있는데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윤선이 표현대로라면 「자존심 빼면 뼈밖에 안 남는」 게 경애의 성격이긴 하지만. 더구나 그 성격에 투기에 손을 댔다고? 종태의 설명을 듣고 나니 더욱 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건 그렇고, 아무튼 집사람이 나를 굉장히 의심하고 있어. 사실은…』 종태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그에게 최근 가까이 지내는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주의력이 없거나 초보이거나 배짱이 세거나 아니면 그 세 가지 다였던지, 종태의 와이셔츠에 립스틱 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종태의 아내는 그 흔적을 남긴 것이 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어쩌다 종태의 차에 타게 되면 내릴 때 반드시 시트에 머리카락이 떨어지지 않았나 확인한다. 그가 갑자기 격하게 나를 끌어당겨 안는 경우에도 화장품이 옷에 묻지 않도록 고개에 힘을 주고 버텨가면서 단계적으로 안긴다. 주의력도 있고 유부남을 만나는 일에 제법 노련하며, 「사랑하는데 남의 남자가 무슨 상관이에요」라며 속마음을 막무가내로 털어놓을 배짱도 없는 것이다. 분명 나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 종태의 아내를 제발로 찾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종태가 내게 가장 강조하는 점은 와이셔츠에 립스틱 자국을 남긴 여자와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글:은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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