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수능은 끝났는데…』 고3생의 고민

  • 입력 1996년 11월 17일 20시 20분


「이제 무엇을 하고 놀까」― 요즘 수능고사를 치른 고3 학생들의 즐거운 고민이다. 우리 학생들에게 입시란 얼마나 길고도 힘든 고역의 대장정인가. 오직 대학 하나 가기 위해 공부에만 매달리느라 너무도 소중한 꿈을 잃고 값진 인생의 가치들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기에 입시지옥으로 부터의 탈출은 그 어떤 감격과도 견줄 수 없다. 학생들은 시험만 끝나면 몇날이고 쓰러져 원없이 자거나 세상 끝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 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하고 숨이 막힌다며 교과서와 참고서 교복 등을 내팽개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철딱서니 없어 보이지만 연민의 정이 솟기도 한다. 그간의 억눌림을 한꺼번에 분출시키는 우리 아이들의 이러한 충동을 두고 어떤이는 규제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방법이 못된다. 부끄럽게도 나는 고3 담임을 맡고 나서 언제 한번 차분하게 아이들과 마주앉아 인생과 사랑과 시를 얘기한 적이 없다. 이런 것들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신선놀음으로 비쳐질까 몸을 사리며 밤낮으로 입시성적 독려에만 매달려 왔다. 본령에서 벗어나 있기는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극심한 학력중시 풍토에서 차마 자식을 바보가 되게 할 수는 없기에 그저 공부만 잘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학생들은 가정 학교 사회교육의 파행속에서 기성의 아류인 아집과 독선, 처세요령 따위를 배울 뿐이다. 그 결과 절제와 인내와 이웃을 모른채 성실한 삶의 가치, 더불어 함께 사는 미덕, 사랑과 용서의 기쁨, 배우고 깨닫는 즐거움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저들이 앞으로 어떤 세상을 이루어갈지 두렵다. 수능 시험이 끝났다 해서 우리의 교육과 부모 노릇까지 멈출 수는 없다. 이제라도 우리 모두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스승은 스승의 자리로, 부모는 부모의 자리로. 우리의 희망인 저 아이들이 진정으로 맑은 눈, 열린 귀, 더운 가슴을 지닌 조화로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모두가 찾아 나서야 할 때다. 전 상 훈(시인·광주 과학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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