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중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트윗 날린 당찬 18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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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女스노보드 한국계 클로이 김

팬들 응원에 활짝 클로이 김이 12일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예선에서 독보적인 연기로 1위에 오른 뒤 팬들과 손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팬들 응원에 활짝 클로이 김이 12일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예선에서 독보적인 연기로 1위에 오른 뒤 팬들과 손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내 생애 첫 올림픽인데 그걸 부모님이 태어나신 나라에서 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기대감 외에는 아무 느낌도 없다. 재밌는 라이딩이 될 것 같다.”

‘금메달 0순위 후보’ 클로이 김(18·미국)은 자신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 앞에서 당당했다. 12일 평창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예선에서 급이 다른 클로이의 연기는 그녀가 어떻게 그렇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줬다.

1차 시기에서 가뿐히 91.50점을 기록해 사실상 결선 직행을 확정지었지만 클로이는 2차 시기에서 한층 더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95.50점을 받고 하프파이프에 ‘넘사벽’을 쌓았다. 이날 경기에서 클로이를 제외하고는 한 번이라도 90점을 넘긴 선수가 전무했다.

올림픽 데뷔전이었고, 그곳은 부모님이 태어나 자란 모국이다. 모두가 클로이의 금메달을 말하고 있다.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일 터.

하지만 18세 소녀는 2차 시기를 앞두고 그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 클로이는 2차 시기를 기다리면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트윗을 날렸다. ‘지금 경기 중 아니니?’라는 트윗에는 ‘맞아’라고 답도 남겼다.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듯 긴장이란 단어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다른 경쟁자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높은 점프, 레귤러와 구피(보드를 탈 때 왼발을 앞에 두느냐 오른발을 앞에 두느냐로 나뉨)를 가리지 않는 부드러운 라이딩, 시작부터 끝까지 점프의 기복이 없는 완성도까지…. 이런 클로이가 압도적인 1위에 오르는 것은 새로운 일도,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아이스크림 트윗’은 클로이가 얼마나 훌륭하게 압박감을 극복해 냈는지를 보여준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이미 클로이는 자신에게 쏠린 세간의 기대에 대해 “부담을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압박감은 경기를 망치게 할 뿐이다. 설령 무의식중이라도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고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잘 아니까 그런 모든 걸 나한테 기대하는구나’ 이렇게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한다”고 말했었다.

사실 1년 전 평창 올림픽 테스트이벤트에서 클로이는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부담감’을 느꼈다. 부모님의 고향인 한국에서 출전한 첫 대회였다. 누구보다 잘해내고 싶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쌓인 부담감은 독이 됐다. 대회 전날 응급실에 실려 갈 만큼 호된 감기에 걸렸고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결선에서 모두 엉덩방아를 찧은 클로이는 포디엄에도 서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의 시행착오는 올림픽 본무대에서 클로이에게 약으로 돌아왔다. 다른 선수들이 더 높이, 더 많이 뛰려고 애를 쓸 때 클로이는 시원시원하고 여유 있게 날았다. 자신의 최고 기술인 3회전(1080도) 기술은 시도하지도 않았지만 최고점이 나온 까닭이다.

클로이 김이 지난해 12월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차 안에서 운전하고 있는 아버지 김종진 씨를 가리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출처 클로이 김 인스타그램
클로이 김이 지난해 12월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차 안에서 운전하고 있는 아버지 김종진 씨를 가리키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출처 클로이 김 인스타그램
클로이는 평소 월드컵 투어 때는 늘 부모님과 함께 숙소 생활을 한다. 아버지 김종진 씨와 어머니 윤보란 씨는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딸의 경기는 물론이고 공식 트레이닝까지 빼먹지 않고 늘 파이프 밑을 지킨다. 스위스에서 여행사를 했던 김 씨와 항공사 직원이었던 윤 씨는 젊은 시절 남부럽지 않게 좋은 곳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어느덧 ‘산밥’을 먹은 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올림픽 기간 클로이는 예외적으로 모든 이동과 숙식을 미국 대표팀과 함께한다. 첫 공식 연습이 있던 9일, 경기장을 찾은 부모님의 얼굴을 오랜만에 본 클로이는 멀리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이날 경기 후 믹스트존을 빠져나가며 클로이가 가장 먼저 찾은 얼굴 역시 부모님이었다. 어머니 윤 씨는 올림픽 첫 무대에서 나온 딸의 압도적인 성적에 “평소보다 우유를 두 배는 먹었나 보다”라며 미소 지었다.

스물여섯에 홀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800달러, 영한사전 하나를 손에 쥐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 김 씨가 딸의 재능을 발견한 뒤 직장까지 관두고 뒷바라지해 클로이를 세계적인 스노보드 선수로 키워낸 스토리는 미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클로이가 스위스에서 유학하던 시절, 김 씨는 스노보드 훈련지까지 왕복 10시간의 운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달 초 방영된 클로이의 슈퍼볼 광고 영상의 모티브가 돼 진한 감동을 전했다.

아버지 김 씨는 예선을 앞둔 용띠 딸에게 ‘한국 속담에 천년을 기다리면 용이 되는 이무기가 있다. 오늘은 네가 천년의 기다림 끝에 이무기에서 용이 되는 날’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아버지의 격려에 딸은 ‘하하하. 생큐 아빠’라는 답을 보냈다. 클로이 김은 13일 결선에 나선다. 승천을 꿈꾸는 그의 곁에는 아빠와 엄마가 있다.

평창=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스노보드#클로이 김#평창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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