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의 뉴스룸]사이클, 그 화려했던 시절을 아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승건 스포츠부 기자
이승건 스포츠부 기자
14일 출발 총성을 울린 ‘투르 드 코리아 2017’ 대회 개막을 앞두고 대한자전거연맹 경기인 원로회장을 맡고 있는 조성환 ㈜빌트모아 회장(77)을 만났다. 1940년생인 그는 후배들이 ‘사이클의 전설’로 손꼽는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 한국 사이클 최초로 아시아경기 2연패(1966년, 1970년)를 달성한 선수도, 1968년 제1회 동아 사이클에서 의미 있는 첫 구간 우승에 이어 제2회 대회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한 주인공도 그였다.

1968년부터 1997년까지 이어진 동아 사이클 대회는 한국 사이클 그 자체이자 아시아 최고의 대회였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2007년 출범시킨 국제 도로 사이클 대회 투르 드 코리아에 본사가 지난해부터 공동 주최사로 함께할 수 있었던 데에는 동아 사이클 대회의 영향이 컸다. 지금도 사이클 원로들이 모이면 동아 사이클 대회 얘기는 빠지지 않는다. 30년 동안 쌓여온 얘깃거리가 얼마나 많겠는가. 조 회장은 “동아 사이클 대회 초창기만 해도 경기가 열리면 건너편 야구장에 있던 관중이 야구를 보다 말고 우르르 넘어왔다”며 사이클이 1960년대 최고 인기 종목이었다고 강조했다. 지금 같으면 믿기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사이클의 전설’이었다는 조 회장을 직접 만나기 전까지 그가 어떤 선수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인터넷 검색을 해 봐도 제대로 된 기사나 사진을 찾기 어려웠다. 조 회장의 회사 집무실에 걸려 있는 사진들 하나하나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던 이유다.

그 사진들 중 하나. 조 회장은 그 속에서 펑크가 난 사이클을 어깨에 멘 채 뛰고 있었다. 1968년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체육대회 트랙 1만 m 종목이었다. 그러고도 우승을 차지했다는 그의 말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조 회장의 유니폼 상의에는 ‘칠성’이 적혀 있었다. 조 회장의 말에 따르면 당시 칠성음료가 수입해 판매한 펩시콜라는 국내 최초 민간 사이클 팀의 이름이었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했던 사이클 전문가는 “펩시가 최초의 민간 실업팀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며 놀라워했다. 조 회장은 이 사실을 정확히 알 수밖에 없다. 본인이 창단 멤버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스포츠 기록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하다. 야구나 축구 등 메이저 종목 단체들은 100년사 등을 만들어 과거의 일을 기록해 놨지만 다른 비인기 종목들은 그렇지 못하다. 하긴 어디 기록뿐이랴. 1925년 경성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돼 조 회장이 사이클을 메고 달렸던 서울운동장은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한순간에 철거됐다. 경성운동장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미국의 리글리필드와 일본의 고시엔구장 등이 리노베이션을 통해 모양만 달라졌을 뿐 제자리를 지키며 추억의 산실 역할을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늦었지만 조 회장 같은 원로들의 기억과 경험을 지금이라도 끄집어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누군가는 운동이란 게 즐기면 되지 과거 얘기가 뭐 그리 중요하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 스포츠가 사랑받는 이유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풍성한 스토리는 하루아침에 나오는 게 아니다. 조 회장은 여든을 앞두고 있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승건 스포츠부 기자 why@donga.com
#투르 드 코리아#사이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