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범현의 야구學] 새 S존이 불러온 긍정의 봄바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4월 14일 05시 30분


스포츠동아DB
스포츠동아DB
최근 야구팬들 사이에 자주 회자되고 있는 키워드는 ‘조범현의 유산’이다. 2000년대 후반 SK 왕조의 토대는 유망주 육성에 공을 들인 조범현 감독의 헌신이 컸다. KIA에 안긴 선물 역시 우승만이 아니다. 온갖 비난 속에 세대교체를 단행해 양현종, 안치홍, 김선빈 등 팀의 신형엔진을 키웠다. kt에 남긴 자산은 KBO리그에서 가장 젊고 강력한 불펜진이다. 스포츠동아는 손꼽히는 야구 이론가이자 오랜 기간 현장을 누빈 조 감독과 함께 ‘조범현의 야구學’을 연재한다. 깊이와 재미를 곁들인 분석으로 독자들의 입맛을 자극할 것이다. 첫 번째 주제는 최근 이슈의 중심인 스트라이크존(S존) 확대다. KBO리그 S존은 2017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사 이후 논의를 거쳐 그 폭을 넓혔다. 야구기자 2년차 고봉준 기자가 묻고, 조 감독이 답했다.

Q : 우선 S존 논란에 불을 지핀 WBC 참사부터 짚어보죠. 최근 치른 국제대회 가운데서 유독 이번 WBC를 놓고 S존과 관련된 구설이 많았습니다.

A : 타자들이 S존에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더군요. 사실 국제대회 S존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경험 많은 타자들도 애를 먹었다는 뜻은 우리 S존만 좁아졌다는 이야기겠죠. 특히 최근 들어 더욱 좁아진 S존이 문제였습니다. 물론 WBC 부진을 S존으로만 연결할 수는 없지만, 원인 중 하나인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만회를 위해서라도 S존 확대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Q : 그렇다면 최근까지 현장에 머물면서 S존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KBO리그 S존, 진짜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A : 우선 S존의 기본 정의에 대해서 알아보죠. S존은 기본적으로 타자가 쉽게 칠 수 있는 구역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심판이 타자가 용이하게 칠 수 있었던 공이라고 판단하면 스트라이크를 준다는 뜻이죠. 이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KBO리그는 S존이 최근 급격하게 좁아졌습니다. S존이 줄어든 이유엔 몇 가지가 있어요. 일단 심판들이 판정 정확도를 높이려고 하면서 구역이 차차 좁아졌습니다. 여기에 TV 중계방송이 S존 화면을 일일이 내보내면서 이를 의식한 심판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죠. 결국 이는 타고투저(打高投低)를 불러왔고, 다소 심각한 다득점 현상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도 경기를 운영하는 데 큰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현장 야구인들이 S존 확대를 놓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한 이유죠.


Q : 이제 모든 팀들이 개막 후 10경기 이상을 치렀습니다. 2017시즌 S존의 변화, 실제로 체감하고 있으신가요.

A : 분명히 변했습니다. 심판진을 통해 알아보니 규정을 새로 바꾸는 일은 어렵지만, 기존 S존을 최대한 활용해 폭넓게 보려고 방침을 정했다고 하네요. 실제로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앉아있는 포수 눈높이에 오는 공은 볼이었는데 올해부턴 이 공이 스트라이크로 판정되고 있어요. 바깥쪽 역시 후해졌습니다. 현재로선 바깥쪽 공 반 개 혹은 하나 정도가 늘어난 듯합니다. 다만 아래쪽은 큰 변화가 없고, 몸쪽 역시 마찬가지에요. 물론 시즌 초반이기 때문에 심판진 성향에 따라 조금씩 범위가 다르긴 합니다.

Q : 현장의 목소리는 어떻습니까. 팀에 따라서 혹은 선수 포지션에 따라서 내는 목소리가 다를 듯한데요.

A : 투수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특히 바깥쪽 공을 잡아주면서 투수들이 힘을 얻게 됐어요. 사실 바깥쪽 꽉 찬 볼은 투수가 가장 잘 던진 공이라고 할 수 있죠. 이 공만큼은 스트라이크로 쳐주자는 이야기가 지난해부터 나왔는데, 올해 실제로 시행되면서 투수들이 심리적으로 편안해졌어요. 포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2스트라이크 이후 상황에 바깥쪽 볼을 결정구로 사용하는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합니다. 타자로부터 멀어 장타 위험요소도 적을 뿐더러 삼진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반면 타자들은 아직까지 적응에 애를 먹고 있어요. 몇몇은 바뀐 S존에 적응하지 못한 채 나쁜 볼에 손이 나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아예 공격적인 스타일로 변신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2스트라이크로 몰리기 전에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죠.

Q : 좋은 포수를 논할 때 미트질로 불리는 프레이밍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흐름에서 포수의 프레이밍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할지 궁금합니다. 일각에선 존이 넓어지면서 프레이밍의 중요도에도 변화가 일 수 있다는 전망이 있습니다.

A : 사실 좋은 캐칭이란 심판이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공을 잡는 것이죠. 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드는 일은 둘째 문제입니다. 어차피 대부분의 심판들이 포수 각각의 프레이밍을 파악하고 있어요. 미트질이 크게 소용없다는 뜻은 아니지만요. S존이 넓어졌다고 해도 마찬가지죠. 포수가 하체로 중심을 잡고 공이 오는 대로 잡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프레이밍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득도 있겠지만, 실 역시 있습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Q : 그렇다면 투수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를 발판삼아 빛을 볼 투수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A : S존 확대의 가장 긍정적인 결과가 아닌가 싶네요. 우선 제구력이 좋은 투수들은 유리할 전망입니다. S존을 폭넓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신인 투수들 역시 덕을 볼 듯합니다. 최근 고교 혹은 대학을 갓 졸업한 투수가 1군에서 빛을 보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구위도 문제지만 좁은 S존을 이겨낼 방법이 없었죠. 이번 변화를 계기로 기량이 출중한 투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입니다. 지난 WBC 때도 코칭스태프가 투수진을 놓고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습니까.

Q : 그렇다면 S존 정착은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할까요.

A : 당분간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하지 않을까요. 심판들의 판정 차이가 줄고, 선수들도 어느 정도 적응한다면 새 S존이 안착하리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KBO리그의 투타 밸런스를 맞추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죠. 때론 손에 땀을 쥐는 투수전이, 또 가끔은 화끈한 타격전이 골고루 열려야 KBO리그도 풍성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정리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