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들 날 온다” 땡볕 스크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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亞경기 金 노리는 럭비대표팀
12년만의 아시아정상 탈환 목표… 34도 뙤약볕에도 “훈련 더하죠”
비인기 설움 뚫고 리우올림픽 조준

한국 남자 럭비대표팀이 지난달 29일 경북 문경의 국군체육부대 내 럭비훈련장에서 스크럼을 짜며 훈련하고 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훈련에서 선수들은 감독과 코치의 지시 이상으로 자발적인 훈련을 하며 전술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문경=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한국 남자 럭비대표팀이 지난달 29일 경북 문경의 국군체육부대 내 럭비훈련장에서 스크럼을 짜며 훈련하고 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훈련에서 선수들은 감독과 코치의 지시 이상으로 자발적인 훈련을 하며 전술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문경=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한 번 더하고 끝내겠습니다.”

온도계의 빨간 선이 3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던 지난달 29일 경북 문경의 국군체육부대 내 럭비훈련장. 1시간 반째 잔디밭 이곳저곳을 뛰어다닌 한국 남자 럭비대표팀 선수들은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숨을 헐떡였다. 정형석 감독(55)은 선수들에게 “이제 그만 훈련하고 들어와서 쉬어”라고 말했다. 이미 정해진 훈련 시간을 넘어섰지만 선수들은 일제히 “더하겠습니다”라고 외쳤다. 정 감독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 대표팀은 세상에 없을 겁니다.”

○ 한때 아시아 최강이었던 한국 럭비

한국 남자 럭비대표팀은 ‘한때’ 아시아 최강이었다.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2개 대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결승에서 일본에 패하며 최강의 자리를 내줬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동메달에 그쳤다.

한국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 일본은 1990년대 후반부터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2003년에는 프로 리그까지 출범시켰다. 2000년대 들어 홍콩과 중국, 스리랑카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실력을 키워 한국을 넘보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럭비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다. 4년마다 열리는 럭비 월드컵의 시청자는 35억 명에 달한다. 9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정식 종목이며,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됐다.

하지만 한국은 올림픽 출전은커녕 10년 뒤 국내에서 종목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비인기 종목인 럭비는 전국에 중고교 팀까지 포함해 50여 개 팀이 있다. 선수는 1000여 명이다. 대학팀은 10개 정도이고, 실업팀은 한국전력과 포스코건설, 삼성중공업 등 단 세 팀에 불과하다. 대표팀도 지난해까지 전용 훈련장이 없어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 그들만의 리그? 그래도 럭비가 좋아요

이날 땡볕에서 벌어진 훈련은 실전 경기와 다름없을 정도로 거칠었다. 선수들끼리 돌진하다 충돌해 뒹구는 선수가 여럿 나왔다.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헬멧 등 보호구를 다 갖춘 미식축구와 달리 럭비는 보호구가 없다. 몸을 부딪치고 태클이 많아 선수들은 항상 부상을 달고 산다. 한건규(29·한국전력)는 “수술대에 한 번이라도 오르지 않은 선수가 없을 정도로 부상을 당할 때가 많다. 하지만 대표팀 선수들은 경기 뒤 몸 이곳저곳이 파랗게 멍들어 있으면 ‘오늘은 열심히 뛰었구나’라고 생각할 정도가 됐다”며 웃었다.

럭비는 큰 체격은 물론 지치지 않은 체력과 빠른 스피드가 필수다. 대표팀 막내 정연식(22·고려대)은 “몸무게가 100kg이 넘는 선수들도 100m를 12초대에 주파할 정도다. 다른 종목과 체력 테스트 경쟁에서도 럭비 선수들이 항상 1위부터 10위를 도맡아왔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국내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대회를 놓칠 수 없는 기회로 보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지만 럭비를 널리 알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목숨을 걸었다’고 말한다. 대표팀 맏형 김근현(33·한국전력)은 “이번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 선수들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정말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훈련 뒤 지친 몸으로 라커룸에 들어간 선수들이 다시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주제는 이날 했던 훈련의 전술 평가. 정말 ‘목숨을 걸었다’는 표현을 쓸 만했다.

문경=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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