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도 축구도 ‘화합 리더십’이 요즘 대세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3월 26일 06시 40분


리더십에도 시대에 맞는 ‘트렌드’가 있다. 프로야구는 김응룡 한화 감독(왼쪽)과 같은 카리스마형 리더십이 초창기부터 오랜 기간 위세를 떨쳐왔다. 해태 시절부터 김 감독의 애제자인 KIA 선동열 감독(가운데)도 ‘강한 리더십’으로 2000년대 중후반까지 야구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최근 3년 사이 LG 김기태 감독(오른쪽)과 같은 화합형 리더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스포츠동아DB
리더십에도 시대에 맞는 ‘트렌드’가 있다. 프로야구는 김응룡 한화 감독(왼쪽)과 같은 카리스마형 리더십이 초창기부터 오랜 기간 위세를 떨쳐왔다. 해태 시절부터 김 감독의 애제자인 KIA 선동열 감독(가운데)도 ‘강한 리더십’으로 2000년대 중후반까지 야구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최근 3년 사이 LG 김기태 감독(오른쪽)과 같은 화합형 리더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리더십이란 과연 무엇인가.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 조직원의 마음을 이끌어내 최대의 효율을 달성하는 역량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왜 이 사람이 우리의 리더여야 하는지’,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카리스마, 지력(知力), 소통 등 수단은 상관없다. 그러나 리더의 권위는 얻기도 어렵지만, 유지하기란 더욱 어렵다. 목표 달성과 구성원의 지지가 때에 따라선 상충하기 때문이다. 실례로 감독은 성적을 내기 위해 선수들을 쥐어짜면서 욕을 먹어야 하는 자리지만,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선수들의 마음을 얻으려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 레너트 코페트는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리더는 선수들의 사랑이 아니라 존경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어떤 명장도 꼴찌 팀, 가망 없는 선수를 개조할 수는 없다. 다만 위대한 리더는 어떻게든 ‘이 사람이라면 믿고 따를 수 있다’는 조직원의 공감대를 확보한다. 따라서 리더가 강한 조직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리더십은 결국 조직관리이자 위기관리인 것이다.

야구선 ‘카리스마 리더십’ 저물고
배려·권력분할 등 ‘화합’이 화두

기성용·박주영 품은 홍명보 감독
포용력 발휘 때 리더십도 극대화

원칙주의 리더십엔 신치용 감독
합리주의 유재학·소통의 전창진

● 야구감독, 리더십은 변한다!

야구감독은 영어로 매니저(manager)라고 한다. 야구의 속성상, 구성원이 워낙 많고 분업화가 철저한 까닭에 감독은 관리자의 성격이 짙다. 케이시 스탱겔 전 뉴욕 양키스 감독은 “감독의 할 일이란 투수 교체와 팀 케미스트리 유지가 전부”라고 말하기도 했다. 감독의 기발한 작전으로 이기는 경기보다 쓸데없이 개입해서 망치는 경기가 많다는 경계심이 담겨있다. 그러나 소설 ‘야구감독’의 모델인 히로오카 다쓰로 전 야쿠르트 감독처럼 지휘관의 역량이 절대적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해태와 삼성에서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을 달성한 한화 김응룡 감독, 2차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각각 4강과 준우승을 달성해 ‘국민감독’으로 칭송 받고 있는 김인식 전 한화 감독, SK 사령탑 시절 한국시리즈 3회 우승으로 ‘디테일야구의 화신’으로 불리는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한국프로야구 리더십의 3대 아이콘이라 할 만하다.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의 계보는 2008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사령탑인 NC 김경문 감독, 한국시리즈 2회 우승에 빛나는 KIA 선동열 감독 등으로 계승된다. 이들에게 감독직은 불가침의 성역이다. 침범 받는 순간, 팀은 무너진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대안 리더십’이 뜨고 있다.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통합 3연패를 이룩한 삼성 류중일 감독의 따뜻한 리더십, 넥센의 창단 첫 4강을 이끈 염경엽 감독의 시스템 리더십, 모래알 LG를 하나로 만든 김기태 감독의 권력분할 리더십 등이 대표적이다. 빌리 빈 오클랜드 단장으로 대표되는 통계에 기초한 ‘프런트 야구’는 ‘절대권력은 절대 위험하다’는 인식을 바닥에 깔고 감독을 견제한다.

홍명보 감독. 스포츠동아DB
홍명보 감독. 스포츠동아DB

● 축구대표팀 홍명보 감독, 권위주의 버리고 권위 얻다!

리더는 흔히 권위주의적으로 통치하면 권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축구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은 카리스마형 리더가 포용력 있게 지배할 때 리더십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홍 감독의 지론은 ‘하나의 팀, 하나의 정신, 하나의 목표’다. 그 어떤 선수도 팀보다 위대할 순 없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게다가 홍 감독의 명성이 워낙 대단하기에 선수들은 감독의 권위에 복종한다. 그러나 막상 대표팀의 훈련 스타일은 부드럽고 화기애애하다. 선수들을 감화시켜 감독을 따라오게 만드는 것이다.

홍 감독의 감화력은 기성용과 박주영을 대표팀에 끌어안을 때 발휘됐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홍 감독의 신임을 받았기에 두 선수는 더욱 절실하게 매달렸다. 2014브라질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홍 감독의 리더십이 아니었더라면, 두 유럽파가 이처럼 빨리 동기부여를 되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 농구 감독, 유재학의 지략 vs 전창진의 소통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체육계에서 보기 드문 합리주의적 리더다. 사실 유 감독은 여느 감독 못잖게 ‘독재자’다. 그럼에도 ‘합리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유는 ‘왜 해야 하는지’를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납득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왜 해야 되는지, 그 필연성을 안다면 똑같이 혹독한 훈련을 시켜도 그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아울러 유 감독은 한국 스포츠의 고질인 정신력 타령을 하지 않는 지도자다. 유 감독은 “선수의 역량은 대개 정해져 있다. 자기가 지닌 장점만 잘 발휘하면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장점들을 조합하는 것은 감독의 몫”이라는 지론을 펼친다. 평범한 선수도 유 감독 밑에 들어가면 조직 내에서 나름의 장점을 바탕으로 빛을 발할 수 있다.

유 감독이 지략으로 선수들의 복종을 끌어낸다면, kt 전창진 감독의 무기는 소통이다. 전 감독 밑에서 뛴 선수들은 거의 그 신도가 돼버린다. 겉으론 선수들을 한없이 몰아붙이지만 뒤에서 배려해주는 전 감독의 용인술에 감복하는 것이다. 일례로 전 감독은 선수 결혼식 때 식장에서 손님맞이까지 챙겨주는 사람이다. 본인은 술을 못하지만 슬럼프에 빠져 괴로워하는 선수가 있으면, 감독방으로 따로 불러 술을 따라준다. 전술에 앞서 마음을 얻는 세밀함과 베풀 줄 아는 도량이 전 감독 주변으로 사람을 모은다. 전 감독은 ‘내가 최고가 아니라면 최고가 나를 위해 뛰게 하면 된다’는 지론을 실천하고 있다.

● 배구 감독 신치용의 특별함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감독은 기생”이라고 말한다. 선수들의 자발성을 끌어내기 위해 ‘밀당’을 할 줄 아는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얘기다. 삼성화재 선수들은 밤 10시30분이면 핸드폰을 반납한다. 숙소에는 TV도 없다. 배구에 필요 없기 때문이다. 새벽 6시30분이면 일어나 몸무게를 측정한 뒤 지옥훈련을 시작한다. 이런 비인권적(?) 삶에 선수들이 기꺼이 동참하도록 만드는 데 신 감독의 특별함이 있다.

첫째가 원칙이다. 고참이라고, 스타라고, 외국인선수라고, 봐주는 법이 없다. 가장 많이 혼나는 선수가 신 감독의 사위인 박철우다. 동료 선수들이 안쓰러워할 정도로 혼난다. ‘삼성화재의 누구여야지 누구의 삼성화재는 용납할 수 없다’는 믿음이 신 감독이 18년간 이 팀을 지휘하면서 얻은 노하우다. 둘째가 솔선수범이다. 선수를 통솔하려면 감독부터 철저한 절제가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서 신 감독은 선수와 인연을 만들지 않는다. 신 감독은 “나와의 개인적 인연을 믿지 말고, 코트에서 흘린 너의 땀을 믿으라”고 선수들에게 말한다.

삼성화재에선 매 시즌 외국인선수가 맹위를 떨친다. 그러나 용병을 뒷받침해주는 국내선수들의 헌신성이야말로 삼성화재가 V리그 6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던 진정한 원동력이다. 올해 체육인 최초로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받은 신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감독은 잘린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에게 배척 당한 감독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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