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성 “여자가 야구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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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9월 24일 07시 00분


서울 비밀리에 최길성 총감독(정면 선글라스 낀 인물)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비밀리에 선수들은 프로선수 출신인 최 총감독에게서 기초부터 탄탄하게 배우고 있다. 사진제공|비밀리에
서울 비밀리에 최길성 총감독(정면 선글라스 낀 인물)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비밀리에 선수들은 프로선수 출신인 최 총감독에게서 기초부터 탄탄하게 배우고 있다. 사진제공|비밀리에
■ 프로야구 선수서 여자야구 지도자로 서울 비밀리에 총감독 최길성

처음엔 여자들이 야구 잘
할까 반신반의
열정은 남자보다 높아…총감독직 수락

5년전 은퇴 후 재무컨설턴트로 새 인생
주말엔 야구장서 ‘호랑이 선생님’ 변신


2013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주최 LG전자·익산시, 주관 한국여자야구연맹·익산시야구협회)에 출전한 팀은 총 37팀. 선수 대부분이 각자 생업에 종사하다 주말에만 야구선수로 변신한다. 주중 저녁시간을 이용해 삼삼오오 모일 때도 있지만, 사설 야구연습장과 야구교실에서 개인훈련을 하는 게 전부다. 당연히 전문가들의 집중지도를 받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그러나 ‘서울 비밀리에’는 하늘의 별을 따는 행운을 잡았다. 그것도 프로야구 출신 선수가 그들의 지도를 전담하고 있다. LG에서 ‘대기만성형 스타’로 이름을 날린 뒤 SK에서 은퇴한 최길성(35)이 바로 비밀리에의 총감독이다.

● 비밀리에가 ‘모셔온’ 프로 출신 총감독

비밀리에는 지난해 최길성을 총감독으로 영입했다. 사실상 ‘모셔왔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행운이 따른 덕분이다. 비밀리에의 일부 선수들이 훈련하던 야구연습장 운영자가 바로 최길성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훈련해도 기초가 탄탄하지 않다면 성장은 더딜 수밖에 없다. 전체적인 실력을 한 단계 높이고 싶었던 비밀리에가 최적의 인물을 발견한 것이다. 최길성은 “얘기를 듣고 굉장히 놀랐다. 여자분들이 야구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아무래도 여자야구에는 전문적으로 야구를 했던 코칭스태프가 없으니 선수들도 찬찬히 지도해줄 수 있는 인물을 필요로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망설이기도 했다. 과연 여자들이 야구를 잘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해서다. 그러나 선수들을 직접 만나본 뒤 마음을 굳혔다. “열정을 갖고 연습하는 걸 지켜보니 기대이상으로 대단하더라고요. 저도 마음이 움직여서 총감독을 맡기로 했죠.”

● 재무컨설턴트로 변신한 ‘대기만성형 스타’

최길성은 연세대를 졸업한 뒤 2000년 KIA의 전신 해태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LG로 이적해 새로운 기회를 노렸지만, 2002년과 2003년에도 2군을 전전하기만 했다. 2004년 10월 데뷔 첫 홈런을 그랜드슬램으로 장식하면서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는 2년 뒤인 2006년 마침내 이름을 널리 알렸다. ‘2군의 배리 본즈’라는 별명을 털어내고 인간 승리의 주역으로 각광받았다. 그해 8월 12일 잠실 한화전에선 투수 트리플크라운에 빛나는 신인 류현진을 상대로 끝내기 2점홈런을 쳐 ‘깜짝 스타’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길성은 2007년 7월 롯데로 트레이드됐고, 2008년에는 1군에 한번도 서보지 못한 채 방출됐다. 이후 테스트를 통해 다시 SK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지만 2008년을 끝으로 결국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래도 그는 금세 새로운 길을 찾았다. ING생명에서 재무컨설턴트(FC)로 일하게 됐다. 최길성은 “야구는 아쉽게 그만뒀지만,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잘 맞는다. 비교적 시간조율이 쉬운 직업이라 운 좋게 이 일도 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LG 선수 시절 최길성
LG 선수 시절 최길성

● “비밀리에는 나와 야구의 연을 잇는 끈”

비밀리에는 이수미 감독이 이끄는 35명의 선수로 이뤄져 있다. 여러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팀이다. 최길성은 주말마다 이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경기가 다가오면 주말 이틀을 모두 비밀리에를 위해 쓸 때도 있다. 최길성은 “사실 선수들이 다른 일을 하면서 주말에만 운동을 하니 실력이 많이 향상되기는 힘들다. 경기 수준도 높을 수 없고, 각자의 운동신경에 따라 기량차도 확실히 많이 난다”면서도 “그러나 열정은 분명히 남자들보다 더 높다. 그런 면에선 오히려 여자야구선수들에게 배울 점이 더 많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는 요즘 비밀리에 선수들에게 ‘호랑이 선생님’으로 통한다. “나름대로 즐겁게 지도한다고 하는데도, 아무래도 내가 운동하던 때처럼 하면 일반인 여자선수들은 무서운 것 같다”는 변명(?)도 했다. 그러나 여자야구와의 인연은 한동안 야구로 밥을 먹고 살았던 그에게도 무척 소중한 게 사실이다. 야구와의 끈을 이어가는 무대이기도 하다. 최길성은 말했다. “20년 넘게 해온 야구를 하루아침에 떠난다는 건 이상하잖아요. 지금은 야구와 동떨어진 일을 하고 있지만, 비밀리에 총감독을 하면서 야구와의 연을 잇는 기분입니다. 저도 선수들에게서 좋은 기운을 받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익산|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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