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선수들 춤추게 하는 ‘형님 카리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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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6월 21일 07시 00분


차기 국가대표팀 사령탑이 유력한 홍명보 감독은 각급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며 탁월한 리더십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스포츠동아DB
차기 국가대표팀 사령탑이 유력한 홍명보 감독은 각급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며 탁월한 리더십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스포츠동아DB
■ 홍명보 리더십 10계명

“지도자 위에 선수” 벤치멤버 의욕 돋워
선수선발 형평성 등 철저하게 원칙 고수
적극적인 의사표현 등 선수들 소통 중시
다양한 플랜으로 돌발상황 유연히 대처


‘홍명보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내년 브라질월드컵을 이끌 대표팀 사령탑으로 사실상 결정됐다. 공식절차만 남았다. 홍 감독이 2009년부터 작년 런던올림픽까지 3년 동안 팀을 이끌며 보여준 각종 사례를 통해 모두가 인정하는 홍명보 리더십의 실체를 살펴본다. 이른바 ‘홍명보 리더십 10계명’이다.

1.지도자가 아래, 선수가 위다

김태영 코치는 홍 감독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다. 2009년 3월 이집트 3개국 대회 때 전날 경기를 못 뛴 벤치멤버들을 데리고 훈련하는데 다들 의욕이 없어 김 코치가 호되게 야단쳤다. 그날 저녁 호텔에서 홍 감독은 김 코치를 불러 “선수 위에 군림할 생각 마라. 선수가 위고 코치가 아래다”고 혼쭐을 냈다. 김 코치는 머리를 뭐로 얻어맞은 듯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2.벤치멤버를 더 감싸줘라

홍 감독은 김 코치를 혼내며 한 마디 더 했다. “교체멤버일수록 더 신경 써라.” 많은 사람들이 홍 감독의 화려한 선수시절만 기억한다. 그러나 그도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로 대성할 수 있을지 매일매일 고민했던 무명이었다. 축구는 하고 싶은데 주목받지 못하는 간절함과 고통을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메이저 대회에서 팀 분위기는 선발 11명이 아닌 벤치 멤버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잘 안다.

3.예외는 없다

홍 감독은 원칙주의자다. 선수선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기성용 발탁이 관심사였다. 당시 스코틀랜드 셀틱에서 뛰던 기성용은 A대표팀 주전이었다. 홍명보호에 오면 보탬이 될 것은 당연했다. 기성용도 참가하길 원했다. 그러나 셀틱이 차출을 반대했다. 기성용과 셀틱은 줄다리기 협상 끝에 ‘조별리그 차출 불가, 토너먼트 진출 시 가능’이라는 중재안을 도출했다. 그러나 홍 감독은 “다른 선수들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아예 안 뽑았다. 기성용은 섭섭했지만 나중에 런던올림픽 팀에 합류 후 그 때 홍 감독의 판단이 옳았음을 느꼈다.

4.촌철살인

‘난 너희를 위해 죽을 테니 너희는 팀을 위해 죽어라’ ‘나는 항상 마음속에 칼을 품고 다닌다. 너희들을 해치려는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화제가 됐던 홍 감독의 어록이다. 홍 감독은 적절한 상황에 맞는 문구와 단어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말이 아니다. 선수 미팅 전에 늘 고민한다. 런던올림픽 영국과 하프타임 때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 “봤지? 영국 애들 X도 아니야”라고 평소 쓰지 않던 속어를 쓰기도 했다.

5.코치를 식구처럼

감독과 코치 사이가 벌어지면 선수들은 귀신 같이 안다. 팀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망가진다. 홍명보호 코칭스태프는 식구다. 박건하 코치는 작년 4월 부친상을 당했다. 홍 감독은 가장 먼저 대전에 차려진 빈소를 찾았다. 그런데 발인 전날 홍 감독이 또 왔다. 홍 감독은 “박 코치도 내 새끼인데 내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기느냐”며 대전으로 향했다. 박 코치는 “마지막 날 장지로 가기 직전까지 자리를 지켜 주셨다. 감동적이었다. 너무 인간적인 그래서 따를 수밖에 없는 사람이 감독님이다”고 했다.

6.정직이 최선이다

홍 감독은 선수들을 정직하게 대한다. 불필요한 꾸짖음으로 선수를 본보기 삼지 않는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특정선수를 부각시키지도 않는다. 홍 감독은 “A선수가 잘못한 걸 다 아는데 지적을 안 하면 감독과 선수의 신뢰가 깨진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을 짧은 시간 속일 수 있고 소수의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는 법. 이런 진심은 결국 선수들에게 전달이 된다.

7.선수들을 능동적으로

2009년 U-20 팀을 맡은 직후 홍 감독은 미니게임 주심을 보며 일부러 편파판정을 했다. 홍 감독 카리스마에 눌린 선수들은 한참 지나도 항의를 안 했다. 홍 감독은 경기를 중단했다. “너희 뭐야? 왜 내가 잘못 보는데 지적을 안 해?” 홍 감독은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주문했다. 홍 감독은 선수시절 히딩크에게 이를 배웠다. 히딩크는 위계질서가 분명하고 소극적인 한국 선수들을 자극하기 위해 비슷한 방법을 썼다. 홍명보호 선수들은 변했다. 홍 감독 질문에 고개를 숙이던 선수들이 시간이 갈수록 대담한 발언을 했다. 홍 감독은 이를 보며 흐뭇해했다.

8.다양한 플랜

홍 감독이 올림픽 전 가장 많이 강조했던 게 다양한 플랜이었다. 홍 감독은 돌발변수가 생겼을 때 허둥대지 않았다. 올림픽 전후로 부상자가 속출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왜 하필’ ‘또 부상?’ 이런 말은 안 했다. 코치, 선수들이 보기에 홍 감독은 이를 전혀 위기로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자연스레 선수단 동요도 가라앉았다. 모든 상황을 가정해 철저하게 준비했기에 가능했다.

9.끊임없는 공부

홍 감독은 2002년 ‘파워 프로그램’을 실시했던 히딩크로부터 과학축구의 기본을 습득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는 코치로 딕 아드보카트를 보좌하며 분석축구를 배웠다. 홍 감독은 스포츠심리학자 등을 초청해 강의를 받는 등 지속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올림픽 후에는 러시아 안지 클럽으로 연수를 떠났다. ‘홍명보 다운 방식이었다. 팀 안에서 직접 훈련, 경기를 봐야 의미가 있다는 신념에 정식 직책도 어시스턴트 코치를 마다하지 않았다.

10.두 번 실수는 없다

홍 감독은 2010아시안게임 때 선수를 포함한 스태프들에게 병역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게 했다. 철저히 입단속을 했다. 그러나 준결승 패배 후 선수들이 쏟는 눈물을 보며 무조건 감추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런던올림픽 때는 달랐다. 병역혜택은 우리가 잘 하면 따라올 수 있는 거라 자연스레 생각하고 즐기자고 했다. 그리고 빛나는 동메달을 걸고 돌아왔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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