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용 감독-유재학 감독 “나 같은 악질이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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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냄새 나는 선수 훈련 안시켜 vs 지각한 선수 공항에 두고 출발
프로배구 6연패 신치용 감독-프로농구 3회 우승 유재학 감독… 첫 만남서 ‘또다른 나’를 보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왼쪽)과 프로농구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코트의 독재자’를 자처한다. 선수를 아끼되 믿으면 안 된다는 지론에서다. 이는 “감독님 말만 들으면 우승할 수 있다”는 선수들의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 명장은 입을 모아 “최근 일부 구단의 감독 경시 풍조는 팀을 망치는 일이다. 선수들은 그런 감독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감독의 사진을 한 장으로 합성 처리했다. 동아일보DB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왼쪽)과 프로농구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코트의 독재자’를 자처한다. 선수를 아끼되 믿으면 안 된다는 지론에서다. 이는 “감독님 말만 들으면 우승할 수 있다”는 선수들의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 명장은 입을 모아 “최근 일부 구단의 감독 경시 풍조는 팀을 망치는 일이다. 선수들은 그런 감독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감독의 사진을 한 장으로 합성 처리했다. 동아일보DB
《 이 두 남자. 코트에서 잘나가고 있다는 점을 빼면 별로 닮은 구석은 없어 보였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58)은 1995년 11월 창단 감독으로 부임한 뒤 19년째 같은 팀을 맡고 있다. 국내 프로스포츠를 통틀어 단일 팀 최장수 사령탑이다. 한전 코치 시절을 포함하면 31년째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실업배구 슈퍼리그 8연패, 2005년 프로 출범 이후 통산 7회에 6년 연속 우승이라는 전인미답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모비스 유재학 감독(50) 역시 프로농구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프로 원년인 1997시즌 대우증권 코치로 프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이듬해에 감독이 됐다. 정규리그 최다승(425승 358패)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챔피언결정전 최다 타이인 3차례 우승을 달성했다. 다음 시즌이면 모비스에서만 10년을 채우는 프로농구 단일 팀 최장수 사령탑이다. ‘감독은 파리 목숨’이라는 요즘 한곳에서 두 자리 햇수를 보낸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두 명장(名將)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를 향해 “팬이자 존경하는 분”이라는 말로 대화는 시작됐다. 》

○ ‘15분 전 문화’…준비된 자가 이긴다

기자가 두 감독을 만나기로 한 시간은 26일 오전 11시였다. 두 사람은 따로 출발했지만 약속이나 한 듯 동아미디어센터 로비에서 조우했다. 10시 40분도 안 됐을 때였다.

▽신 감독=미리 준비해야 직성이 풀린다. 오전 9시에 출발한다고 하면 선수단 모두 8시 45분쯤 버스에 탄다. 늦는 선수가 있으면 9시까지는 기다리다 1초만 지나도 출발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15분 전 문화’가 모든 준비의 시작이다. 지금은 그런 선수가 없다.

▽유 감독=나도 비슷하다. 한번은 버스가 출발하는데 고참 선수가 뛰어 오더라. “너 필요 없다”고 한 뒤 그냥 갔다. 그 선수가 부랴부랴 택시를 잡아타고 톨게이트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각한 외국인 선수를 공항에 남겨 둔 채 비행기를 탄 적도 있다.

▽신 감독=작전타임 때 보면 준비가 된 팀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1년 내내 손발을 맞춰 왔는데 무슨 긴 말이 필요한가. ‘야, 너 뭐하는 거야’ 한마디면 선수 본인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를 알 정도가 돼야 한다. 물론 코트를 나누는 배구와 몸싸움을 하는 농구는 다를 것이다. 그래서 유 감독은 ‘만수’(萬手·1만 가지 지략을 갖고 있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고 나는 천수(千手)쯤 될 거다. 혼자 우승한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는 나와 비교해 3년에 한 번씩 우승하는 것만 봐도 나보다 한 수 위다(웃음).

(실제로 유 감독은 2006∼2007, 2009∼2010, 2012∼2013시즌에 우승했다.)

▽유 감독=신 감독님이 한 인터뷰에서 ‘초보는 자기 팀만 보고 노련한 감독은 상대를 본다’고 말씀하셨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고스톱을 칠 때도 내 패만 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것 아닌가. 중요한 경기일수록 작전과 지시는 간단해야 한다. 이는 철저한 준비가 뒷받침될 때만 가능하다.

○ ‘합리적 악질’…감독은 독재자다

삼성화재 선수들은 취침 전 휴대전화를 반납한다. 간식으로 라면을 먹는 일도 없다. 모비스 선수들은 방문경기 때도 선수단 모두가 아침 식사를 함께 한다. ‘프로가 아니라 고교 팀’ ‘선수 인권 탄압’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신 감독=라면회사에서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운동선수가 밤에 라면을 먹는 것은 다음 날 몸 상태에 큰 지장을 준다. 휴대전화 역시 마찬가지다. 늦은 밤에 전화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술을 먹고 있을 텐데 그런 통화를 하다 잠을 못 자면 훈련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 좋은 생활이 좋은 훈련과 좋은 경기로 이어진다.

▽유 감독=휴대전화까지 통제한다니 정말 치밀하다. 나도 한번 생각을 해 봐야겠다(웃음). 아침에 보면 선수 상태를 안다. 준비가 덜 된 선수들은 운동을 몇 배로 시킨다. 술 냄새를 풍기는 선수는 버스에 안 태우고 뛰게 한다. 간섭은 안 하지만 사생활이 지장을 주면 훈련을 통해 반드시 제재를 한다.

▽신 감독=결국 사생활을 통제하는 것 아닌가(웃음). 나는 유 감독과 달리 훈련을 아예 안 시킨다. ‘다른 선수들에 피해 주지 말고 쉬라’고 한다. 훈련을 안 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아야 한다. 하루 쉬고, 이틀 쉬다 보면 영원히 쉬게 되는 거다.

▽유 감독=상대 팀과 같은 숙소에 머물 때가 있다. 아침에 그 팀 선수들은 따로따로 식당에 내려오는데 우리는 함께 이동해 같이 먹는다. 선수들이 처음에는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단합된 모습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하더라.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한 신치용 감독(오른쪽)과 유재학 감독. 신 감독은 “평소 팬인 데다 TV를 통해 많이 봐서 그런지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하다”고 인사했고, 유 감독은 “종목은 달라도 꼭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한 신치용 감독(오른쪽)과 유재학 감독. 신 감독은 “평소 팬인 데다 TV를 통해 많이 봐서 그런지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하다”고 인사했고, 유 감독은 “종목은 달라도 꼭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신 감독=감독은 악질이어야 한다. 단, ‘합리적 악질’이라야 한다. 선수를 억압하는 듯 보여도 결국은 그게 선수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선수들을 아끼되 믿으면 안 된다.

▽유 감독=맞다. 선수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문제가 없다. 무조건적인 강압과는 다르다. 단체 종목은 한계를 뛰어넘어야 되는데 혼자서는 못한다. 자율을 주면 다 중간에 포기한다.

▽신 감독=그동안 악질 감독이라고 욕 많이 먹었는데 유 감독도 대단한 악질이다. 동지를 만나 반갑고 기분이 좋다. 그러고 보니 오늘 자리는 ‘악질 단합대회’다.

유 감독이 자신은 악질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에 동석한 기자가 “선수들한테 물어 보니 모두 악질이라고 하던데요”라고 했다. “그래요?” 한바탕 웃은 유 감독이 말한다. “알고 보면 편한 사람인데…. 그래도 신 감독님 악질에는 아직 못 미치죠.”

○ ‘진정성이 바탕’…선수의 마음을 잡아라

버스 출발 시간 앞당기고, 선수 사생활 통제하고, 훈련 강하게 시켜 이길 수 있다면 어느 감독이 우승을 못할까. 두 명장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빈틈 보이지 않기’와 ‘진정성’이다.

▽신 감독=감독을 하면서 아침 훈련에 늦은 적이 없다. 불가피한 일로 늦게까지 술을 먹으면 사우나에서 뺨을 때려가며 정신을 차린다. 감독이 불성실하면 선수들이 가장 먼저 안다. 프런트와도 잘 협조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감독은 영(令)이 설 리 없다.

▽유 감독=나도 아침 훈련에 가장 먼저 나가려고 노력한다. 술 잘 깨는 체질인 신 감독님과 달리 술 마시면 다음 날 많이 힘들다. 그래도 냄새 안 풍기려고 갖은 애를 쓴다. 사람이 어떻게 빈틈이 없을 수 있나. 그럼에도 빈틈을 안 보이려 노력하면 선수들이 이를 알아주는 것 같다.

▽신 감독=감독의 권위는 진정성에서 나온다. 그것이 전달되면 선수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팀 퍼스트. 프로는 팀이 먼저다. 팀에 대한 헌신과 배려가 없다면 제아무리 스타라도 필요 없는 존재다. 감독부터 헌신해야 한다.

▽유 감독=팀은 작은 사회다. 그 안에서 인간관계 및 협동과 배려를 배운다. 언젠가 선수들이 체육관에 가면서 침을 뱉어 놓은 것을 봤다. 당장 불러 모아 혼쭐을 냈다. 기량은 나중 문제다. 건강한 사회인으로서의 기본이 먼저다.

▽신 감독=유 감독이 배구를 했다면 삼성화재의 6연패는 어림없었을 것이다. 농구를 한 게 정말 다행이다.

▽유 감독=오늘 많이 배웠다. ‘고급 정보’를 너무 많이 알려 주시는 바람에 모든 팀이 다 따라 할 것 같아 걱정된다(웃음).

두 감독 모두 배구와 농구 외의 다른 일에는 눈 돌릴 겨를이 없다고 했다. 무엇인가에 모든 것을 건 이들에게 낭만이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기에 삼성화재와 모비스는 강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명장의 대화는 네 시간 넘게 이어졌다. 별로 닮은 곳이 없어 보였던 두 감독은 그새 ‘도플 갱어’(분신)라도 된 듯했다. ‘합리적 악질’과 ‘독재자’를 자처하는 두 남자는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다른 모든 팀이 더 긴장해야 할 것 같다.

이승건·이종석 기자 why@donga.com

[채널A 영상]‘코트의 명장’ 두 감독이 말하는 특별한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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