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계도 세상의 벽도 발레로 사뿐히 넘었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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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올림픽서 공연한 다운증후군 발레리나 백지윤씨

백지윤 씨(오른쪽)와 엄마 이명희 씨가 공연을 앞두고 분장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평창=이승건 기자 why@donga.com
백지윤 씨(오른쪽)와 엄마 이명희 씨가 공연을 앞두고 분장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평창=이승건 기자 why@donga.com

학교에 가는 일은 고역이었다.

백지윤 씨(21·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가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 또래 아이가 “너도 ‘다운’이냐”고 물은 게 계기가 됐다. 애써 남들과 똑같이 키우려 했던 엄마 이명희 씨(48)는 당황했다. 임신 중 장애검사를 했을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갓 태어난 지윤이를 보자마자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처럼 절망감이 엄습했다.

인생을 바꾼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와 함께 ‘호두까기 인형’을 본 게 행운이었다. 이후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발레리나는 꿈이 없던 지윤 씨의 유일한 꿈이 됐다.

“이런 아이가 학원에 있으면 다른 학생들이 안 와요.”

몇 군데에서 거절을 당한 후 지윤 씨는 겨우 발레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아무리 연습을 해도 늘지 않았다. 다운증후군은 신체 발달과 지적능력 발달이 모두 늦다. 말도 더디다. 성인이 돼도 평균 지능지수(IQ)는 20∼50 정도. 키도 잘 자라지 않고 운동신경도 크게 떨어진다. 그런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는 지윤 씨에게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 정신과 근육을 집중해야 하는 발레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발끝으로만 서서 몸을 빙그르르 돌려야 하는 회전(턴)은 평형감각이 떨어지는 지윤 씨에게 넘기 힘든 벽이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울었다. 다치기도 일쑤였다. 다행히 흘린 눈물과 땀방울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비장애인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시나브로 지윤 씨의 발레 실력은 늘어갔다. 한없이 작아졌던 자신감도 함께 커졌다.

지난달 30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 공연을 앞둔 지윤 씨는 한껏 들떠 있었다. 분장실에 앉아 있는 그의 뒤로 발레리나 김주원 김지영 이영진 씨가 분주히 오갔다. 발레리노 이원국 이영철 이동훈 씨도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발레를 할 때는요, 내가 ‘왕따’당했다는 걸 잊을 수 있어요. 그래서 발레가 좋아요.”

예상보다 지윤 씨는 말을 잘했다. 표현력도 뛰어났다. “발레를 한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옆에 있던 엄마가 딸을 대견한 듯 바라본다.

이날 지윤 씨는 평창 겨울 스페셜올림픽 문화행사 첫날 프로그램 ‘발레&음악’에 출연했다. 국립발레단이 주축이 된 이 이벤트에서 지윤 씨는 자신의 우상들이 공연한 무대에서 ‘지젤’ 중 페전트 파드되(소작농 2인무)에서 여자 솔로 부문을 소화했다.

공연은 무사히 끝났다. 연기 도중 잠시 균형을 잃기도 했지만 지윤 씨는 이내 중심을 잡은 뒤 다시 춤을 췄다. 걱정하던 회전도 멋지게 해냈다. 675개의 좌석이 모자라 복도까지 가득 찬 관객들은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브라보∼ 브라보∼.”

객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이병우 성신여대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평창 겨울 스페셜올림픽 개막식을 총지휘했던 그다. 무대 위의 작은 소녀는 애써 흥분을 참으며 나비처럼 살포시 인사를 했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발레리나였다.

평창=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스페셜올림픽#백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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