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초보사령탑으로 정규시즌 깜짝 우승 앞둔 류중일 삼성감독

  • Array
  • 입력 2011년 9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욕은 내가 먹겠다, 편하게 하라”…‘형님리더십’에 선수들 펄펄

류중일 삼성 감독이 1등을 상징하는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고 있다. 정규 시즌 우승까지는 1승만 남겨두고 있다. 삼성라이온즈 제공
류중일 삼성 감독이 1등을 상징하는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고 있다. 정규 시즌 우승까지는 1승만 남겨두고 있다. 삼성라이온즈 제공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10시경 걸려온 전화 한 통. 대뜸 “감독을 맡아 달라”고 했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선동열 전 감독의 계약은 4년이나 남아 있었다. 그해 팀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감독 교체라니. 더구나 새로운 사령탑은 자신이라니.

좋기는커녕 걱정이 앞섰다. 지난 6년간 팀은 한국시리즈 우승 두 번에 준우승 한 번을 했다. 최소한 지난해보다는 잘해야 체면이 설 것 아닌가. “지키는 야구가 아닌 호쾌한 야구를 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말처럼 성적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기가 어디 쉬운가. 그는 한국에서 가장 큰 고민을 떠안은 남자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채 아홉 달이 지나지 않았다. ‘초보’라는 꼬리표는 사라졌다. 지도력에 대한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요즘 한국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다. 25일 넥센전 승리로 삼성은 남은 9경기에서 1승만 더 하면 정규 시즌 우승을 확정짓는다. 매직넘버 ‘1’을 남긴 류 감독을 지난주 대구구장에서 만났다.

―시즌 전 팀에 대한 평가가 인색했다.

“잘해야 3, 4위권이라는 말을 들었다. 마음이 편했다. 사실 우리 팀은 변수가 많았다. 선발 원투펀치가 없었고, 오승환이 부상에서 돌아올지도 미지수였다. 무엇보다 감독이 못 미더웠던 것 같다.(웃음) 하지만 시즌 초반 잘 버티면서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었다. 미완성이던 팀에 살이 붙으면서 강해졌다.”

―스스로 이렇게까지 잘할 거라고 생각했나.

“전혀 예상 못했다. 다른 팀과 달리 우리 선수들은 큰 부상이 없었다. 설혹 부상자가 나와도 대체 선수들이 그 자리를 잘 메워줬다. 채태인이 빠졌을 땐 조영훈이, 배영섭이 빠지면 이영욱이 메워주는 식이었다. 타자가 안 될 땐 투수가 잘 던졌고 투수가 못 던질 땐 타자들이 잘 쳐줬다.”

―시즌 중 용병 교체도 대성공을 거뒀다.

“나믿가믿(나는 믿을 거야, 가코 믿을 거야)이란 말이 유행하지 않았나. 사실 가코를 끌고 갈지 말지 걱정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가코가 부상을 당했다. 미련 없이 그를 보낼 수 있었다. 카도쿠라 역시 무릎이 안 좋은 것 같아 교체했다. 그렇게 데려온 두 외국인 투수 저마노와 매티스가 지금 우리 팀의 원투펀치다. 팀이 잘되려니까 이렇게도 되더라.”

―1위의 일등공신을 꼽는다면….

“단연 오승환이다. 다른 팀은 모두 마무리 때문에 고생했다. 우리는 오승환 덕분에 ‘8회 야구’를 할 수 있었다. 9회를 편하게 볼 수 있었던 게 행운이었다. 타자 중에는 홈런왕이 유력한 최형우가 잘했다. 전반기 1번 타자 배영섭, 후반기 1번 타자 김상수도 팀 공격을 잘 이끌었다.”

―감독 가운데 감정 표현이 많은 편이다.

“감독 되더니 사람이 바뀌었다는 말을 듣기 싫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행동하려 했다. 코치나 선수들에게 화를 내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내가 선수생활을 할 때도 욕을 먹는 것보다 격려를 받는 게 더 도움이 됐다. 선수들에게 ‘욕은 내가 먹을 테니 너희들은 편하게 하라’고 주문한다.”

―형님처럼 선수들을 대한다고 하던데….

“선수들과 가벼운 내기를 자주 한다. 투수 정인욱은 초구 스트라이크를 못 던진다. 그래서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지면 10만 원을 주고 못 던지면 내가 10만 원을 받기로 했다. 박한이는 땅볼 좀 그만 치라고 땅볼 유무에 10만 원을 걸었다. 그런데 선수들이 내 돈을 잘 못 따가더라. 주로 내가 이긴다. 물론 돈은 나중에 돌려준다.”

―경북 출신 프랜차이즈 스타인 데다 성적까지 좋아 팬이 많이 늘었겠다.

“사랑해주시는 건 참 고맙다. 그런데 가끔 불편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사우나를 무척 좋아한다. 요즘도 거의 매일 가는 편이다. 그런 곳에선 몰라봐도 좋은데 꼭 알아보고 알은척을 하신다. 감독이 되고 나니 친구들도 연락하길 어려워한다. 감독이 외로운 직업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한국시리즈 직행을 눈앞에 뒀는데….

“누가 올라오든 재미있을 것이다. 2009년 조범현 KIA 감독이 우승할 때 좋은 꿈을 꿨다고 하지 않았나. 나도 그런 꿈같은 이야깃거리가 하나 있다. 우승하면 말하겠다. 그 말을 꼭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구=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