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김화성 전문기자의 눈]한국인에 안성맞춤… 경보가 희망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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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경보밖에 없었다. 한국은 3일 남자 경보 50km에서 박칠성(29·상무)이 3시간47분13초의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7위로 골인해 톱10에 진입했다. 남자 경보 20km에서 6위를 차지한 김현섭(26·삼성전자)에 이은 두 번째 톱10. 한국 육상 2개의 톱10이 모두 남자 경보에서 나왔다. 더구나 박칠성은 자신이 갖고 있는 한국기록을 2분58초나 앞당겼다. 14위를 차지한 김동영(31·삼성전자)도 자신의 최고기록을 2분40초 줄였다.

기대했던 남자마라톤은 정진혁 23위(2시간17분04초), 이명승 28위(2시간18분05초), 황준현 35위(2시간21분54초)에 그쳤다. 한국은 상위 3명의 기록 합산으로 순위를 정하는 번외경기 단체 성적에서 6위를 차지한 데 위안을 삼아야 했다. 단체전 1, 2, 3위는 케냐, 일본, 모로코가 각각 차지했다.

한국 경보 선수는 남녀 통틀어 10여 명에 불과하다. 육상 47개 종목 중 선수가 가장 적다. 그 몇 명 안 되는 선수로 이번 세계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역설적이다. 그만큼 경보는 한국 육상이 전략적으로 해볼 만한 종목이다. 이번 대회 남자 50km 10위 안에 든 국가를 보면 더욱 그렇다. 러시아 2명(1, 2위), 호주 2명(3, 5위), 중국 2명(4, 8위), 일본 3명(6, 9, 10위), 한국 1명(7위)이다. 러시아의 독주에 호주와 한중일 3국이 추격하는 형세다.

한국엔 김동영도 있다. 김동영은 초반 무릎 굽힘으로 2개의 경고를 받지 않았다면 충분히 톱10에 들 수 있었다. 김동영은 “20km도 걷지 않았는데 파울을 2개나 받는 바람에 몸이 굳었다. 스피드를 낼 수가 없었다. 한 번 더 경고를 받으면 실격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박칠성은 경고 없이 안정적으로 레이스를 펼쳤다.

경보 50km는 ‘지옥의 레이스’다. 40km 이후엔 흐느적거리는 선수를 흔히 볼 수 있다. 근육경련은 보통이다. 토하거나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 박칠성도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말했다. 이번 레이스에서도 45명 중 25명만 완보했다. 12명이 실격했고, 8명이 중도 포기했다. 실격은 90% 이상이 무릎 굽힘 경고 때문이다. 이번에도 총 52개의 경고 중 47개가 무릎 굽힘 경고였다. 두 발 들림 경고는 5개에 불과했다.

결국 체력 부족 탓이다. 힘이 달리면 허리가 틀어지고, 그 자세는 곧바로 무릎 굽힘으로 이어진다. 요즘 국제심판 추세도 두 발 들림엔 관대한 편이지만, 무릎 굽힘에는 가차 없다. 사실 두 발 들림은 슬로비디오로 보면 경고감이 많다. 심판도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경보는 한국인에게 안성맞춤이다. 체력과 인내력 없인 못 한다. 박칠성과 김동영도 이번 대회를 위해 1500여 km나 걷기 연습을 했다. 기본자세를 익히고, 스피드만 붙인다면 얼마든지 해볼 수 있다. 현재 한국 선수들은 모두 중장거리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경보학교에 다니는 러시아 선수들과 경쟁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전국체육대회 대학부엔 경보 종목이 아예 없다. 한국 대학에 마라톤 선수는 많지만 경보 선수가 한 명도 없는 이유다.

―대구에서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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