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 D-2]국내 언론 처음으로 선수촌에서 만난 볼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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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 절던 볼트 “걱정 마, 완전 좋아”… 유유히 자전거산책

대구 동구 율하동 선수촌에 마련된 선수용 공동 컴퓨터실에서 24일 선수들이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대구=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대구 동구 율하동 선수촌에 마련된 선수용 공동 컴퓨터실에서 24일 선수들이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대구=변영욱 기자 cut@donga.com
한 무리의 자전거 행렬이 선수촌을 누볐다. 익숙한 얼굴의 사나이가 선두를 이끌었다. 한바탕 자전거 레이스를 즐긴 그는 선수촌 식당이 자리한 챔피언 하우스로 왔다. 자전거에서 내린 이는 다름 아닌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번개’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 전날 훈련에서 발목 통증을 호소하며 찌푸렸던 얼굴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장난기 많은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24일 본보 기자가 세계육상선수권 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어진 대구의 최첨단 선수촌 안에서 볼트와 다시 만났다. 20일 선수촌 개장 후 국내 언론이 선수촌 미디어센터(SMC)의 정식 허가를 받아 내부를 취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식당으로 향하는 볼트에게 일부 언론에서 제기된 발목 부상 상태부터 물었다. ‘한국 팬들이 당신의 왼쪽 발목 통증에 대해 염려하고 있다’고 하자 다소 어이없다는 듯이 두 팔을 들며 “무엇 때문에 걱정하는가. 나는 완전히 괜찮다. 자전거도 타지 않느냐”고 답했다. 선수촌에서 제공한 자전거는 선수들에게 인기 만점인 이동 수단이다.

볼트는 선수촌 내 식당에서 동료들과 식사했다. 한국에 와서 주로 먹던 치킨과 함께 야채, 밥, 고기 등을 골고루 섭취했다. 축구광답게 식사 중에는 TV에서 중계되고 있는 유소년 축구 경기를 시청했다. 100m와 200m 경쟁자인 이매뉴얼 콜랜더(트리니다드토바고)와는 반갑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식사를 마친 볼트는 “선수촌이 환상적이고 매우 편안하다”며 “대구스타디움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말했다.

볼트뿐 아니라 선수촌 안에서 만난 선수들은 ‘환상적이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먼저 입주 전 개방된 최신형 아파트의 깔끔한 환경에 대한 찬사가 많았다. ‘블레이드 러너’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남아공)의 룸메이트인 레만 페레스는 “방이 특급호텔보다 깨끗할 정도로 완벽하다”며 “아파트 지하가 바로 식당과 연결돼 있는 점도 편리하다. 움직이기 힘든 오스카도 이 점을 특히 좋아했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도 선수촌 102동의 맨 꼭대기 층인 15층에 여장을 풀었다. 15층은 특별히 복층 구조로 설계됐다. 대표팀 주장 박태경(110m 허들·광주시청)은 “선수촌 김치가 엄마가 해준 것처럼 맛있다”며 즐거워했다.

선수촌 내 어디서든 무선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점도 화제다. 아나우크 하건 등 네덜란드 여자 400m 계주팀 선수들은 자신의 스마트폰에 있는 페이스북 화면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무선 인터넷이 잘되는 게 가장 만족스럽다. 선수촌 사진을 페이스북을 통해 고향 친구들에게 전송했다”며 즐거워했다.

선수촌 내 사우나도 외국 선수들에게 큰 인기다. 사우나 출입 관리를 맡고 있는 자원봉사자 이기형 씨(72)는 “옷을 모두 벗고 들어가는 시설이지만 하루 평균 30명 이상의 외국 선수단이 방문한다. 이탈리아, 미국, 인도 선수들에게 특히 인기다”라고 말했다.

그 밖에도 선수촌 곳곳에는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차 체험관, 에어컨이 부착된 간이 화장실, 정자, 당구장, 500mL 물통으로 채워져 있는 대형 냉장고, 슈퍼마켓, 카페, 도핑실 등 없는 게 없다. 선수촌 카페에서 만난 로널드 포베스(110m 허들·케이맨 제도)의 말이 대구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선수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환경이면 모든 선수들이 집같이 느끼지 않을까요?”

대구=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1990년대 스타 볼던 “파월 1위, 볼트 3위” 전망에 ▼
볼트코치 밀스 “그렇게 예상할 수도 있지만…”

우사인 볼트가 24일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선수촌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선수촌에서 만난 볼트는 발목에 부상을 입었다는 소문에 대해 “나는 완전히 괜찮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대구=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우사인 볼트가 24일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선수촌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선수촌에서 만난 볼트는 발목에 부상을 입었다는 소문에 대해 “나는 완전히 괜찮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대구=변영욱 기자 cut@donga.com
“말하지 않겠다.”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의 개인 코치인 글렌 밀스 씨는 24일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볼트에 대한 질문에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아디다스가 마련한 이 자리에서 푸마의 유니폼을 입는 볼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밀스 코치는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는다.

밀스 코치는 2004년부터 볼트와 손을 잡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잇달아 볼트를 3관왕으로 이끌며 최고의 지도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볼트는 다른 스포츠용품 회사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함께 회견에 참석할 순 없었다.

볼트 대신 이날 회견장에는 아디다스 유니폼을 입은 여자 200m 우승 후보 베로니카 캠벨 브라운(29)과 남자 100m에서 최연소로 10초 벽을 깬 요한 블레이크(22)가 나왔다. 밀스 코치는 아디다스의 후원으로 자메이카에서 육상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블레이크는 그 학교의 대표적인 선수다.

하지만 밀스 코치는 제자 볼트에 대한 애정을 숨기진 않았다. 최근 1990년대 세계 육상계를 주름잡았던 아토 볼던(트리니다드토바고)이 이번 대회 남자 100m 우승자로 아사파 파월(29·자메이카)을 꼽고 2위 블레이크, 3위 볼트로 전망한 것에 대해 그는 “그렇게 예상할 수도 있지만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며 볼트에 대한 믿음을 보였다.

한편 4년 만에 트랙에 돌아온 남자 100m 스타 저스틴 게이틀린(29·미국)은 대구 선수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 그동안 배가 고팠다. 이제 다시 뛰어 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2005년 세계선수권 남자 100m, 200m에서 우승했던 게이틀린은 2006년 7월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8년간 선수 생활을 금지당했다. 그 뒤 4년으로 자격 정지가 줄어 2008년 트랙으로 돌아왔다.

대구=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 볼트 스타트, 박태환보다 4배 빨라 ▼

0.146초 vs 0.65초.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가 육상 100m에서, 박태환(21·사진)이 수영 200m에서 각각 세계신기록과 아시아신기록을 세울 때 출발반응 속도다. 0.5초 이상 차이가 난다.

볼트의 약점은 느린 스타트다. 큰 키(195cm)에 다리가 길어 출발에는 불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 결승에서 세계기록(9초58)을 작성할 때 볼트의 출발반응 속도는 0.146초로 전체 8명 중 4번째에 그쳤다. 그나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당시 세계신기록(9초69)을 세우며 우승할 때(0.165초)에 비하면 훨씬 좋아진 것이다.

반면 박태환의 출발반응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광저우 아시아경기 200m에서 아시아신기록으로 우승할 때 출발반응 속도는 8명 중 1위였고, 올 상하이 세계선수권대회 400m에서 우승할 때 출발반응 속도 역시 가장 빨랐다.

하지만 박태환은 볼트에 비해서도 한참 출발이 느리다. 육상과 수영 선수들의 출발반응 속도가 이렇게 차이 나는 이유는 뭘까.

먼저 출발 자세가 다르다. 육상 단거리 선수들은 트랙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대는 크라우칭 스타트를 한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잔뜩 이동해 있기 때문에 점프를 한 뒤 입수해야 하는 수영 선수에 비해 유리하다. 수영 출발대(규정 각도 10도 이내, 통상 3도 사용)와 달리 선수가 자신에게 유리한 각도로 조절할 수 있는 육상 스타팅블록은 추진력을 극대화한다.

종목 특성에 따른 근육도 육상 선수가 유리하다. 체육과학연구원 송홍선 박사는 “같은 단거리라고 하지만 100m를 10초 안팎에 달리는 육상과 50초 가까이 헤엄쳐야 하는 수영은 근육이 다르다. 육상은 순발력이 중요하지만 수영은 지구력이 먼저다. 출발 신호에 반응하는 데는 순발력 훈련에 주력하는 육상 단거리 선수가 앞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구=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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