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의 호기심 천국] 빠르면서 낙차도 크다…정현욱 명품커브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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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2일 07시 00분


감아채는 피칭으로 회전수 늘려 폭포수 낙폭
큰 키로 직구처럼 전력피칭 스피드도 수준급

제구 까다로운 커브 높게 형성땐 장타 위험성
윤성환 구속 떨어져도 낮은 제구로 타자 요리

삼성 정현욱, 윤성환과 평균적인 투수들의 커브 궤적
투구추적시스템 통해 비교한 커브의 달인들

오승환(삼성)의 직구, 윤석민(KIA)의 슬라이더, 류현진(한화)의 체인지업, …. 프로야구 타자들이 꼽는 최고 구종들이다. ‘커브의 1인자’로는 다수의 타자들이 정현욱과 윤성환(이상 삼성)의 이름을 거론한다. 3일 대구 넥센전에서 3-2로 앞선 삼성의 8회초 수비 2사 주자 없는 상황. 삼성 류중일 감독은 넥센 알드리지 타석 때 1.1이닝을 무안타로 막던 안지만을 정현욱으로 교체했다. 결과는 삼진.

류 감독은 다음 날 “정현욱의 커브 때문에 투수를 바꿨다. 알드리지는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에 약점이 있다”고 밝혔다. “슈욱 떨어지는 폭포수 같다”(넥센 송지만)는 달인의 커브. 이를 스포츠기록통계 전문회사인 스포츠투아이(주)의 투구추적시스템(Pitch Tracking System·PTS)을 통해 살펴봤다.

○정현욱의 커브 분석-빠르면서도 큰 각

PTS는 경기장에 설치돼 있는 3대의 카메라로,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난 시점부터 홈플레이트를 지날 때까지를 추적해 데이터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초속 및 종속, 릴리스포인트, 회전수, 투구분포, 구종별 평균 궤적형태 등을 산출할 수 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는 전 구장에, 국내에선 잠실·광주·사직·문학 등 4개 구장에 설치돼 있다.

<표>를 통해 확인하듯, 정현욱 커브의 분당 회전수(약 1532회)는 프로야구 투수들의 평균(약 1157회)보다 약 1.3배 더 많다. 양상문 스포츠동아 해설위원은 “커브는 일단 회전이 많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그만큼 각도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이 큰 커브는 일반적으로 구속이 떨어진다. 양 위원은 “예를 들어 너클커브의 경우 중지에만 회전을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에 회전력이 더 좋고 각도 크지만 속도는 보통의 커브보다 느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현욱의 커브는 월등한 회전과 큰 각에도 불구하고, 구속(초속 약 120.9km/h)이 투수들의 평균(초속 약 117.9km/h)보다 더 빠르다. 삼성 포수 진갑용은 “특히 떨어지는 순간의 속도가 좋다”고 평가했다.

상하, 좌우의 무브먼트도 엄청나다. 상하 무브먼트는 회전하지 않는다고 가정한 공과 실제 투구가 각각 홈플레이트를 통과할 때의 높이 차다. 만약 이 값이 양수라면 그 공은 중력의 영향보다 더 적은 하강을 한 것이고, 음수라면 중력의 영향보다 더 많이 떨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오승환 직구의 상하 무브먼트 값(35.52cm)은 전체 투수의 평균(28.07cm) 보다 더 크다.

따라서 중력의 영향을 이기는 힘이 더 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현욱 커브의 상하 무브먼트(-20.05cm)는 투수들의 평균치(-4.86cm)보다 무려 4배다. 회전하지 않는다고 가정한 공과 실제 투구가 각각 홈플레이트에 도달했을 때의 좌우 차이 값을 나타내는 좌우 무브먼트 값(13.46cm·포수 오른쪽이 양수) 역시 투수들의 평균(9.49cm)보다 1.4배 크다.

큰 키(187cm), 정통파의 폼에서 나오는 높은 릴리스포인트(196cm) 역시 커브의 낙차(릴리스포인트와 홈플레이트를 직선으로 이었을 때 실제 궤적과의 격차가 가장 큰 지점의 값)를 크게 만드는데 유리하다. <그림>에서 확인하듯, 정현욱의 커브는 평균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서 시작한다. 정현욱은 “빠른 커브를 던지려면 직구처럼 전력으로 투구해야 한다. 훌라후프를 던져서 내 쪽으로 다시 오게 하듯이, 몸 안으로 감아 채는 동작에 회전수의 비밀이 있다”고 밝혔다.

○윤성환의 커브 분석-큰 각과 낮은 제구
<표>에서 확인하듯 윤성환의 커브는 분당 회전(약 1331회)이 평균(약 1156회)보다 큰 대신 구속(초속 약 113.2km/h)은 평균(초속 약 118km/h)보다 느리다. 하지만 평균(9.60km/h)보다 적은 초·종속의 차이(8.84km/h), 평균(-4.80cm)보다 2배 이상의 상하 무브먼트(-12.53cm) 등이 강점이다.

윤성환은 “나는 각이 큰 커브를 선호한다. 선발투수이다 보니 아무래도 타이밍 싸움에서 커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타자를 해봤지만 2스트라이크 이전에는 노리지 않고 있으면 각이 큰 커브를 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윌리 스타겔 같은 위대한 타자도 샌디 쿠팩스의 커브를 치는 것을 “포크로 커피를 떠먹는 일”에 비교했다.

윤성환의 커브는 특히 <그림>에서 살펴보듯 제구가 낮게 형성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홈플레이트 통과시 높이(0.67m)가 평균(0.70m)보다 약간 낮다. 야구 역사상 최초의 변화구임에도 커브는 컨트롤이 어려운 구종으로 꼽힌다. 커브는 투수 입장에서 톱스핀이 걸리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선 타격시 백스핀을 주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종이다. 따라서 높게 형성되는 커브는 장타로 연결될 위험성도 있다.

정현욱은 “커브는 각이 크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구종보다 제구가 힘들다. 커브를 자기가 원하는 코스에 자유자재로 던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커브가 좋은 투수랑 상대하면 아예 커브는 버리는 타자들도 있다. 이 때 커브를 유인구가 아니라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 쓸 수 있다면 훨씬 투수가 유리해진다. 특히 우타자들이 움찔하게 되는 몸쪽 커브는 가장 위력적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커브라도 타자의 눈에 익으면 위력이 떨어진다. 이미 주무기가 노출된 정현욱, 윤성환 역시 같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윤성환은 “슬라이더나 체인지업도 많이 섞어 던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넥센 정민태 투수코치는 “커브도 2가지 종류를 보유하고, 완급을 조절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지적했다.

전영희 기자 (트위터@setupman11)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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