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커스] “퇴장도 야구의 일부분…과감한 조치 필요”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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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6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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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항의·퇴장문화 이대로 좋은가” 야구계 파워엘리트 50명 설문

항의도 야구의 일부다. 그러나 전부일 수는 없다. 과연 어느 선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그 경계선을 놓고 야구계에서는 입장에 따라 온도차가 극명하다. [스포츠동아 DB]
항의도 야구의 일부다. 그러나 전부일 수는 없다. 과연 어느 선까지 용인될 수 있는지, 그 경계선을 놓고 야구계에서는 입장에 따라 온도차가 극명하다. [스포츠동아 DB]
경기질서 유지…관중에 볼거리 제공 측면도
“흥행 찬물…퇴장 줄이는 게 낫다” 16% 그쳐

“상벌위 후속징계 탓에 항의·퇴장 문화 경직”
“추가제재 없는 단순퇴장 확대를” 24명 최다
올시즌 프로야구에서는 단 한번도 퇴장조치가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퇴장을 선언할 만한 상황은 있었다. 1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SK-두산전에서 두산 김동주(35)가 6회 주심의 삼진 판정에 불만을 품고 반말로 거칠게 항의한 장면이었다. 당시 주심은 올해 심판경력 7년째로 1군심판 중 최연소인 김정국(32) 심판위원. 김 주심은 당시 당황하며 퇴장조치를 내리지 못했다. 심판이 한발 물러서자 항의는 봇물처럼 터졌다. 김동주에 이어 양의지(24) 역시 6회에 배트를 집어던지며 심판판정에 불만을 표출했고, 급기야 김경문 감독까지 달려나와 심판과 언쟁을 벌였다. 모두 퇴장을 줄 만한 사안이었지만, 이날 단 한 차례도 퇴장이 선언되지 않았다.

이는 다른 팀에까지 여파가 미쳤다. 일부 팀에서는 “우리도 저 정도 항의를 해도 심판이 퇴장을 주지 않는 것인가”라는 의문부터, “비슷한 수준의 항의를 했을 때 우리에게 퇴장을 준다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렇다면 과연 야구에서 항의는 어떤 선까지 이뤄져야하고, 어떤 선을 넘으면 퇴장조치가 취해져야하는 것일까. 스포츠동아 이슈&포커스는 이번에 ‘한국프로야구의 항의와 퇴장문화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프로야구에 종사하는 파워엘리트 50인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항의도 경기의 일부처럼, 퇴장도 경기의 일부

야구인 50인 중 41명(82%)은 ‘퇴장 사유에 해당하면 심판은 퇴장조치를 아끼지 말아야한다’고 답변했다. ‘가능한 퇴장은 없거나 줄이는 편이 좋다’는 응답자는 8명(16%),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 응답자는 1명(2%)이었다. 결국 프로야구에서 ‘퇴장은 당연히 있어야한다’는 의견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퇴장이 있어야 기본적인 질서가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룰에 나와 있는 대로 적용하면 된다. 선수의 의사표시도 경기의 일부로 인정하고, 규칙에 나와 있는 선을 넘으면 심판이 퇴장을 집행하는 것도 경기의 일부다. 김동주도 퇴장감인데 룰대로 적용을 못 시킨 것이다. 김동주도 만약 퇴장을 당했으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순철 해설위원 역시 “선수들도 감정표현을 할 수 있고, 항의도 하라고 돼 있는 것 아니냐”면서 “퇴장도 야구의 일부분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퇴장이 프로야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부류도 있었다. 삼성 장원삼은 “퇴장은 가급적 줄여야한다”고 했고, SK 고효준은 “퇴장을 당하면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며 퇴장조치에 비우호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효봉 스포츠동아 해설위원과 LG 조인성은 “선수나 감독의 퇴장이 잦아지면 결국 프로야구 흥행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퇴장감 수준은 어떻게 보나?

욕설을 하거나, 심판의 신체에 접촉하는 행위, 심판에 대한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한다면 퇴장감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항의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견해가 엇갈리기도 했다. 두산 김광수 수석코치는 “선수가 스스로에게 화가 나 뒤돌아 혼자 욕을 할 때도 있는데 그것 때문에 불러세워 퇴장을 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병주 심판위원은 “팀 분위기 전환용으로 항의를 할 때도 있는데, 심판들은 그것도 하나의 야구 흐름으로 받아들인다”면서도 “선을 벗어나면 1차로 경고하고, 그래도 반복되면 퇴장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심판의 입장을 설명했다. 결국 불만을 표출하는 강한 액션이 선수가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인지, 심판판정에 대한 불만표시인지의 해석에 따라 이해와 오해의 경계를 넘나들 수밖에 없다.

○항의와 퇴장문화에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한국프로야구는 올해로 30년째에 접어든다. 그러나 프로야구에서 항의와 퇴장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경직된 항의와 퇴장문화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항의하는 측에서는 일정한 선을 넘으면 ‘내가 퇴장당한다’는 각오를 하면 된다. 야구에서 퇴장은 나쁘게만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도 메이저리그처럼 항의와 퇴장에 대해 유연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BO 조종규 심판위원장 역시 “우리나라도 이젠 어필도 강하게 할 수 있고, 퇴장도 깨끗이 받아들이는 문화가 필요하다. 아직 우리는 모두 선후배로 얽혀 있어 퇴장을 주는 쪽도, 퇴장을 받는 쪽도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면서 아쉬워했다. SK 김상진 코치와 KIA 최태원 코치는 “항의와 퇴장도 야구의 일부분이다. 관중들에게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될 수 있다”고 동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야구인 A씨는 “고인이 된 김동엽 감독은 ‘괴짜’이기도 했지만, 초창기에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나와 심판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그것이 지금은 추억이지 않느냐”면서 “최근 감독들은 너무 몸을 사린다. 신사답게 덕아웃만 지키고 있다. 팬들은 가끔씩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상벌위 명확한 가이드라인 설정과 징계의 유연성 필요

그렇다면 퇴장조치 후 후속조치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에 대해 50명 중 11명(22%)은 현재의 상벌위원회 후속조치가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퇴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24명(48%)이나 됐다. 징계 기준과 가이드라인이 명확하게 제시돼 형평성을 갖춰야한다는 지적도 11명(22%)이었다. 4명은 “잘 모르겠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KBO 김인식 규칙위원장은 “(상벌위원회에서)팀 사정 봐주고 넘어가 줄 때가 있다. 원칙 없이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롯데 양승호 감독과 한화 정민철 코치는 “상벌위원들이 신중하게 고민해서 결정을 내리겠지만”이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일관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SK 김성근 감독은 “퇴장은 그 경기에서 끝내야 한다. 아주 심한 상황이 아니면 추가징계는 안 줘야한다”고 했고, 김용희 해설위원도 “사실 퇴장 자체가 페널티인데, 추가 제재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두산 김선우는 “메이저리그 시절 나 역시 벤치클리어링을 할 때 맨 앞에 나가 주동한 3∼4명에 포함돼 퇴장을 당했지만 다음날 멀쩡하게 경기를 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한 행동을 가지고 상벌위원회에 회부돼 경기출장 정지를 당하고 죄인취급을 하는 건 지나친 처사라고 본다”며 단순퇴장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심판위원은 “상벌위원회에서 출장정지나 벌금 등 제재를 가해 심판들도 퇴장을 머뭇거리게 된다”며 이 때문에 오히려 과감한 퇴장조치를 내릴 수 없는 심판의 고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수나 감독이 깨끗하게 퇴장을 인정하지 못하고 더 흥분하는 것도 결국 후속조치가 이어지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오히려 퇴장조치가 내려질 때마다 상벌위원회가 소집돼 징계가 내려지는 상황이 프로야구의 항의와 퇴장문화가 성숙해지는 데 방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국 기자 (트위터 @keystonelee)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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