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기 홈런]더그아웃에 가면 뭔가 특별한 게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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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습니다.” 일본프로야구 홍보 담당자들은 감독 또는 선수와의 인터뷰를 요청하면 이렇게 말한다. 당사자의 허락 없이는 안 된다는 거다. 취재진은 더그아웃 주변에 모여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한다.

박찬호와 이승엽이 소속된 오릭스의 고시엔 방문경기 취재를 갔을 때도 그랬다.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은 말없이 걸었다. 기자 20여 명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하지만 복도를 지나 실내연습장을 둘러본 그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평하는 일본 기자는 없었다.

한국프로야구는 야구 기자가 취재하기에 천국과 같다. 경기 당일 오후 더그아웃으로 가면 감독과 선수를 만날 수 있다. 감독 옆에 앉아 지난 경기와 앞으로의 계획을 듣는다. “1점 차 승부에 강한 팀이 진정한 강팀이다”(류중일 삼성 감독)라거나 “잘 노는 선수가 운동도 잘한다”(김시진 넥센 감독)는 식의 명언은 이 자리에서 나온다. 훈련을 마친 선수들과 스스럼없이 인터뷰를 할 수 있다. 경기장과 TV에선 볼 수 없는 야구 기자만의 특권이다.

더그아웃에서 기자를 맞는 감독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요즘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LG의 박종훈 감독은 친절하다. 경기에서 이긴 날은 “선수들에게 힘이 생겼다”, 패한 날도 “좋은 경험이 됐다”는 식으로 말한다. 류중일 감독은 무뚝뚝하다. “경기는 선수가 하는 거고 감독은 지켜보는 게 일”이라며 믿음을 강조한다. SK 김성근 감독은 전날 팀이 부진하면 오전에 별도 구장에서 특별훈련을 시킬 정도로 혹독하다. 그러나 기자를 만날 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다감하다. 김시진 감독은 자신의 선수 시절을 곁들여 야구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반면 모 감독은 팀이 연패에 빠지면 더그아웃에 잠시 나왔다가 “할 말이 없다”며 감독실로 돌아가기도 한다. 팀이 연패에 빠지면 감독의 속내도 타들어 가기 때문이다.

더그아웃은 야구단엔 야전사령부이지만 기자들에겐 사랑방과 같다. 경기가 열리기 전 감독과 선수를 만나는 일은 즐겁다. 그 속에서 오늘도 각본 없는 야구 드라마가 준비되기에.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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