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극과 극 ‘롤러코스터 연봉계약’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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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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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삭감 하한선 없어져 ‘연봉 반토막’ 속출인상에도 제한 없어 김상현 4.6배 올라 단숨에 억대로

《30대 회사원 A 씨는 회사와 노조가 임금 협상을 할 때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지만 결과는 매년 비슷하다. 물가상승률에 1∼2% 보태지면 다행이다. 그래도 아직 깎인 적은 없다. 퇴출 등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내년 살림살이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한화 류현진은 2007년 만 20세에 억대 연봉 대열에 합류한 뒤 올해 연봉 4억 원에 재계약할 때까지 매년 연차별 최고 연봉을 새로 썼다(관련기사 참조). 평범한 직장인들은 부러울 따름이다. 반면 최근 LG와 재계약한 박명환의 연봉은 지난해 5억 원에서 10분의 1인 5000만 원이 됐다. 깎인 4억5000만 원은 웬만한 회사원 10년 연봉을 훌쩍 넘는다. 롤러코스터 같은 프로야구 연봉의 세계를 알아본다.》

최저 2400만 원… 1년 새 5배까지 껑충


프로야구 최저 연봉은 2400만 원이다. 지난해 400만 원이 올랐다. 신고 선수를 제외한 모든 신인이 최저 연봉을 받는다. 올해 최고 루키 한화 유창식의 연봉도 2400만 원이다. 그대신 그는 계약금으로 7억 원을 챙겼다.

신인들의 연봉은 이듬해부터 천차만별이다. 2006년 데뷔 때 2000만 원이던 류현진의 연봉은 다음 해 5배로 뛰었다(표 참조). 2005년 신인왕 삼성 오승환의 연봉은 다음 해 3.25배 올랐다. 1년 만에 연봉이 3배 이상 오른 선수들 대부분이 5년차 안팎인 데 비해 KIA 김상현은 특별하다. 2000년 프로 유니폼을 입은 그의 연봉은 2009시즌을 마친 뒤 4.6배 올랐다. 활약도 특별했지만 연차에 비해 연봉이 적어 가능했다.

프로야구 초기에는 연봉 인상에도 상한선이 있었다. 당시에 류현진이 활동했다면 구단과 합의해 별도의 보너스를 챙길 수는 있었겠지만 공식적인 인상률은 25%를 넘길 수 없었다.

25% 상한선은 1995년부터 고액 연봉자에게만 적용됐고 2000년 완전히 폐지됐다. 덕분에 1999년 1억1000만 원이던 삼성 이승엽의 연봉은 이듬해 드러내놓고 3억 원이 될 수 있었다. 사실상 규약이 사문화됐지만 국내 선수와 달리 용병은 현재에도 연봉 상한선이 30만 달러로 정해져 있고 재계약 시 인상률도 25%를 넘지 못한다.

‘반 토막 연봉’ 2008년부터 급증

2007시즌까지만 해도 삭감 하한선이 존재했다. 2억 원 이상은 40%, 1억 원 이상∼2억 원 미만은 30%, 1억 원 미만은 25% 이상 감액할 수 없었다. 물론 선수가 동의하면 더 깎을 수 있었지만 2008년 2월 규약 자체가 폐지됐다. 재정 상태가 좋지 못했던 히어로즈가 새로 리그에 참가한 게 원인이 됐다. 인상할 때 상한선이 없기에 삭감 하한선도 폐지해야 한다는 구단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반 토막 연봉이 속출했다. 2007년 현대에서 6억 원을 받았던 송지만은 3억8000만 원이 깎인 2억2000만 원에 계약했다. 이전까지 역대 연봉 최다 삭감 금액이었다. 김동수, 이숭용, 전준호 등 히어로즈의 다른 주축 선수들의 연봉도 대폭 깎였다.

성적만 좋으면 20대 초반에도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프로야구. 그러나 1년 사이 소득이 반 이상 줄어드는 일도 다반사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동영상=두산베어스 신인 선수들, ‘모델 해도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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