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호균의 7080 야구] 1974년 고교야구 굴욕…대만 아닌 자만에 졌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0년 10월 29일 07시 00분


2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우승한 뒤 이번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야구가 다시 한번 정상에 설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위선양은 물론 성적에 따른 선수단의 병역문제 또한 중요한 관심사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지켜야할 국방의 의무, 그러나 국가에 지대한 공헌을 한 자에 대해 주어지는 병역혜택은 야구선수들에게 있어서 야구인생의 중대 사안임에 틀림없다.

중국은 아니었지만 대만 과거 대만에서 열렸던 국제대회를 떠올려본다. 1974년, 나는 인천고 3학년이었다. 당시 고교 선발팀은 여름이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한일 정기 대항전을 펼쳤다. 그런데 당시 경기를 앞두고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피격사건으로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정기전이 취소되고 말았다. 고교대표팀은 대신 12월말부터 이듬해 1월초까지 대만(자유중국)으로 원정경기를 가게 됐다.

1974년 한국고교 대표군은 나름대로 최강의 멤버로 구성됐다. 대구상고 김한근 장효조, 경북고 장정호 정진호, 군산상고 조종규 김용남, 광주일고 강만식, 휘문고 유제룡 등 최고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당시 일본야구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교류를 통해 정보를 갖고 있었지만, 대만야구에 대해서는 정보가 어두웠다. 그래서인지 대만 고교선발팀과의 경기는 쉽지 않았다.

타이베이, 타이중, 화롄, 가오슝 등을 돌며 경기를 했는데, 예상보다 대만 선수들의 기량이 좋았다는 기억이 난다. 당시 대만선수들의 플레이는 동양 스타일의 짜임새 있는 야구보다는 힘을 앞세운 미국 스타일의 야구를 추구했던 것 같다.

결과는 2승5패로 참패. 그 시절 대만 선수들은 리틀리그 출신들로 구성돼 있었다. 대만의 리틀리그가 세계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던 때였다. 고교대표팀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한국의 성인 대표팀 역시 대만 원정경기에서는 유독 성적이 좋지 않았다. 당시 한국선수들의 기량이 그들에게 뒤졌다기보다는 자만심과 정보의 부재로 힘든 경기를 했다고 본다.

이번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대만과 첫 경기를 펼친다. 금메달로 가기 위한 첫 관문에서 만나는 대만전의 중요성은 대표팀 선수들도 모두 알고 있을 터이다. 최근 올림픽이나 WBC 등 국제대회에서도 대만을 압도한 것을 보면 한국선수들의 기량은 분명 대만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만 정보에 어두웠던 과거와 달리 요즘 한국은 정보전과 전력분석 면에서도 강국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자만심은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가장 경계해야할 적이다. 후배들이 좋은 결과를 얻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임 호 균
삼미∼롯데∼청보∼태평양에서 선수로, LG∼삼성에서 코치로, MBC와 SBS에서 방송해설을 했다. 미국 세인트토머스대학 스포츠행정학 석사. 선수와 코치 관계는 상호간에 믿음과 존중, 인내가 이루어져야만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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