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기자의 킥오프]불모지 여자축구 육성을 위한 제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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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남녀 각급 월드컵 사상 최고인 세계 3위를 한 뒤 여자 축구인들은 모두 무척 기뻐하면서도 척박한 현실이 개선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한탄했다.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서울에서 유일한 여자 초등부 축구팀을 보유하고 있는 송파초교의 주진희 감독은 늘 선수들의 불투명한 미래를 고민한다.

가능성이 보이는 아이의 집에 찾아가면 부모가 “애가 장래에 뭘 할 수 있는지 비전을 제시하라”고 하는데 마땅히 할 말이 없단다. 학부모들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국내에는 대학팀이 6개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중 영진전문대와 위덕대는 올해 선수를 받지 않기로 하는 등 해체 절차를 밟고 있다. 실업도 7개 팀이 전부.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이 ‘여자가 축구는 해서 뭐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선수 수급이 안 되는 이유다. 송파초교에 선수가 16명 있는데 인근에서 다니는 선수는 단 2명. 14명은 모두 전남 목포와 경기 파주 등 서울 외곽에서 ‘유학’온 선수들이다.

서울 동명초교에서 남녀 축구팀을 지도하다 여자팀의 해체를 지켜본 윤종석 감독(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이화여대나 숙명여대 등 명문 여대가 팀을 키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두 학교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에 처음 도입된 여자 축구를 위해 여자팀을 창단해 한국 여자 축구의 기틀을 닦고 1993년쯤 해체시켰다.

당시 이화여대 감독인 강신우 MBC 해설위원은 “국내 현실을 감안할 때 정책적으로 명문 대학에 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90년 당시에는 정부가 지원금도 줬다. 시도 등 지자체팀의 창단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 정상정복의 가능성을 찾은 여자 축구가 열악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려면 인위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다.

학부모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시스템 변화도 필요하다. ‘운동선수’ 키우는 학교 축구보다는 아이들이 방과 후나 주말에 축구교실이나 클럽에서 즐겁게 공을 차게 하고 그 가운데서 좋은 선수들을 선발해 키우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저변을 넓힐 수 있다. 세계 3위의 여자 축구, 가야 할 길이 아직 너무 멀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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