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 탐구생활] 토종은 안된다? 봤지, 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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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4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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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감독. [스포츠동아 DB]
허정무 감독. [스포츠동아 DB]
3순위 감독후보 네번째 월드컵무대 수락
과감한 결단…토종지도자 명예회복 선언

아르헨전 1-4 충격패 땐 외신 비난 극복
“16강은 1차목표…갈 길 멀다” 승부욕도


23일(한국시간) 나이지리아와의 최종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선수단 버스 안.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허정무 감독은 복잡한 감정과 마주했다.

3년 전인 2007년 12월 초. 축구협회로부터 대표팀 감독을 제의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그는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으로 간택 받았다. 축구협회는 외국인 지도자 2명을 우선순위로 정해놓고 영입작업을 벌였다가 실패한 뒤 마라톤 회의 끝에 허 감독을 선임했다. 외국인 감독을 우선순위에 올려놓은 이유는 ‘국제무대에서 검증된 실력’이었다.

한국은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외에 국내 지도자로는 월드컵에서 16강은 고사하고 1승도 올리지 못했다. 월드컵 16강이 기준이라면 국내 지도자는 아예 대상에서 제외돼야 했다. 그도 자신이 3순위였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가족들은 모두들 펄쩍 뛰었다. 이미 한 차례 경험을 통해 대표팀 감독이 얼마나 ‘몹쓸 자리’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밤을 지새웠다. 생각은 많았지만 결단은 한 순간에 내렸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한 번 부딪혀보자.’

● 국내 지도자들의 운명을 걸고

그러나 감독직 수락은 그만의 운명일 수 없었다. ‘국내 지도자는 검증이 안 됐다’는 인식을 바꿔야 했다. 감독 선임 직후인 12월17일 ‘대한축구협회 지도자 세미나’에 참석한 그는 “올해 꼭 대표팀에서 좋은 성적을 내줬으면 한다. 땅에 떨어진 국내 지도자들의 자존심을 찾아 달라”는 국내 지도자들의 당부를 들었다. 그는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답했다.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3년 후 허 감독은 86멕시코월드컵 사령탑이었던 김정남 프로연맹 부회장, 90이탈리아월드컵 이회택 부회장, 98프랑스월드컵 차범근 해설위원 등 선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원정 월드컵 첫 16강이라는 한국축구 역사를 새로 썼다.

● 월드컵에서 후회를 환희로

축구인생에서 그처럼 월드컵과 깊은 인연을 맺은 이가 또 있을까.

그러나 지난 월드컵은 언제나 후회의 연속이었다. 1986멕시코월드컵은 선수, 90이탈리아월드컵은 트레이너로 태극전사와 함께 했다. 1994미국월드컵에서는 코치로 3연속 출전을 이어갔지만 세계의 높은 벽만 실감하고 돌아와야 했다. 무엇보다 아쉬운 건 가진 능력을 100%% 쏟아 붓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고 누차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고비는 찾아왔다. 그리스를 꺾으며 5000만 국민의 기대를 부풀렸지만 다음 아르헨티나에 1-4로 참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1차전에서 승리하고도 16강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 “전술에 문제가 있었다. 패인은 바로 허 감독이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마이 웨이’를 외쳤다. 그리고 결국 월드컵에서 뿌리 깊었던 ‘후회’를 ‘환희’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 이제 시작이다

2002년 히딩크는 16강행을 확정지은 뒤 “나는 아직 배고프다”는 말로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4강 신화의 시작이었다.

허정무 감독도 마찬가지. 그는 “16강부터는 단판 승부기 때문에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16강이라는 1차 목표를 달성했지만 그 이후 어디까지 갈지 알 수 없다. 더 큰 목표로 가는데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다”며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더반(남아공)|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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