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희망의 별’ 임흥세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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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8일 23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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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기로 뜨거운 남아프리카공화국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시의 빈민촌 마을 이퀴지레템바. 흐롱완 체포 군(13)이 맨발로 축구공을 찼다. 헝겊을 덧댄 바람 빠진 축구공에는 물을 채웠다. 체포 군의 부모님은 둘 다 에이즈로 사망했다. 얼마 전에는 누나마저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하루 한 끼, 학교에서 배급하는 옥수수 가루 반죽으로 주린 배를 겨우 채우지만 체포 군은 발에서 축구공을 놓지 않는다. 체포 군에게 축구는 에이즈와 배고픔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유일한 희망이다. '이퀴지레템바'라는 빈민촌 마을의 이름은 '희망의 별'이라는 뜻이지만 이곳 아이들은 에이즈와 마약, 배고픔으로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바로 축구였다.

빈민촌 아이들에게 '희망의 별'이 돼 준 것은 한국에서 온 임흥세 감독(54)이었다. 임 감독은 '야생마' 김주성 선수(현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과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키워낸 스승이다. 한국에서 잘나가는 지도자 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지만 2006년 1월 임 감독은 홀연히 남아공으로 떠났다. 선수 시절부터 '50대가 되면 어려운 아이들에게 축구로 희망을 전하겠다'고 결심해 온 그다. 4년 동안 임 감독을 거쳐 간 제자만 5000여명이다. 빈민촌 아이들뿐만 아니라 소년원에 수감된 아이들부터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들까지 절망 속에 살고 있던 많은 아이들이 임 감독과 함께 땀을 흘렸다. 마약과 술에 찌들었던 아이들은 축구를 하며 나쁜 습관을 버렸다. 올해 1월에는 부모가 에이즈 환자이거나 자신이 에이즈 보균자인 아이들만을 모은 축구단도 만들었다. 10분만 뛰어도 주저앉던 아이들이 이제는 한 시간 훈련도 너끈하다.
"체력도 좋아졌지만 아이들이 축구를 하면서 웃음과 희망을 되찾은 게 가장 큰 성과입니다. 감기나 독감에 걸려 합병증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마약을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나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9일 이퀴지레템바에 있는 임 감독의 축구교실에 천연잔디 축구장이 개장한다. 홍명보장학재단과 하나은행이 1억4000만 원의 기금을 들여 마련한 축구장이다. 임 감독은 스승을 잊지 않은 제자의 선물에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남아공에서 월드컵이 열린다지만 소수를 제외하고 이곳 빈민촌 사람들은 TV조차 없어 구경도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빈민촌에 세워진 이 축구장이야말로 월드컵의 정신이자 상징입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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