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서 金을 캐다…이젠 국가가 보답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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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8일 07시 00분


이상화. 스포츠동아 DB
이상화. 스포츠동아 DB
한국스피드스케이팅이 연일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16일 모태범에 이어 17일(한국시간) 이상화가 여자 500m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땄다. 육상 100m격인 500m에서 남녀 동반 금메달은 한국이 최초. 그렇다면 빙속강국으로 급부상한 국가대표팀의 훈련 이면은 어떨까?

태릉선수촌에서 스피드스케이팅 대표선수들을 보려고 빙상장만 찾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어쩌면 선수촌 중앙에 위치한 메인스타디움에서 사이클 훈련에 한창일 수 있으니까.

왜 그들은 육상 선수들이 훈련하는 운동장 트랙에서 사이클을 탈까. 어, 가만 보니 사이클이 어째 좀 이상하다. 뒤에 뭔가가 달려있다. 자동차 타이어다. 그렇게 6레인짜리 400m 트랙을 그들은 묵묵히 돈다.

설명을 들어보니 훈련의 목적은 근지구력 강화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국제대회에 출전하면 어쩔 수 없는 체격과 체력의 열세를 절감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초반 레이스의 약점을 어떻게든 중반 이후 만회할 수밖에 없다.

단거리 500m, 장거리 5000m가 마찬가지다. 그래서 도출한 결론이 하체 강화, 곧 다리로 빙판을 미는 힘의 강화다.

거칠게 비유하면 하체가 짧은 육상선수가 보폭 너비의 한계를 보폭 횟수로 커버하듯 ‘빙판을 지치는(피치)’ 속도와 빈도로 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빙속의 숙명이다.

이 지점에서 사이클 훈련의 의미가 생겨나고, 최고도의 효율성을 위해 타이어까지 부착하는 것이다. ‘결승선까지’ 최고 속도를 유지하고픈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그런데 한참 훈련에 불이 붙을 찰나, 선수들의 페달이 돌연 멎는다. 그리고 운동장을 조용히 빠져나간다. 원래 주인인 육상 선수들이 훈련할 시간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운동장을 빠져나온 국가대표들은 그대로 넓디넓은 선수촌을 돈다. 몇 바퀴를 도는지 모른다. 시계바늘이 몇 바퀴째 돌아도 그들의 ‘레이스’는 멈추지 않는다.

그 광경을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젠 익숙한 모양이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선수들의 훈련장은 바로 그 순간, 선수촌 아스팔트 도로인 것이다.

명색이 국가대표인데, 길바닥이라니. 혹시라도 다치면 어떡하나, 아찔하기조차 하다. 넘어져도 안전한 우레탄이 깔린 트랙은 그들을 위해 준비되지 않았다. 국가대표들의 질주는 오직 아스팔트에서만 자유롭다. 그리고 타이어를 매달고 달리는 아스팔트의 종착점은 밴쿠버올림픽의 영광이었다.

설정을 첨가했지만 이야기는 선수촌 관계자들의 진술에 근거한 실제상황이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밴쿠버올림픽에서 ▲과학적 기법의 선수단 체력관리 ▲올림픽 경기장의 빙질과 실내온도 분석 ▲2명의 스케이트화 정비 전문가까지 준비하는 지극정성으로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의 최고 성적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정작 인프라는? 국가대표들은 한국에 돌아오면 다시 아스팔트를 달릴 수밖에 없는데, 이제 국가가 그들의 땀과 눈물에 보답할 차례인 것 같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 다시보기 = 이상화, 한국 女빙속 사상 첫 금메달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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