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 오프]미디어 멀리하니 팬들도 멀리하고… 제 살 깎는 K리그 ‘쉬쉬 행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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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농구가 프로로 전환할 때 한국농구연맹(KBL)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미디어 전략을 벤치마킹했다. 농구와 팬의 연결통로인 미디어에 어떤 정보를 제공해야 팬들을 즐겁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KBO 따라하기’를 한 것이다. KBO는 모든 행정 정보를 미디어에 노출시킨다.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기자들이 감독, 선수들과 격의 없이 만나도록 했다. 야구에 대한 모든 것이 팬들에게 바로 전달돼야 인기도 얻을 수 있다는 철학에 따른 조치다. KBL은 KBO의 전략에 플러스알파를 했다. 결국 농구는 배구를 제치고 겨울 스포츠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프로야구 출범 1년 뒤인 1983년 닻을 올린 프로축구는 정보 비공개를 고수했다. 구단이 얼마를 쓰는지, 선수 연봉이 얼마인지 공개하지 않는다. 그저 추정치만 돌아다닌다. 경기 전 기자들이 선수를 만날 수도 없다. 이런 K리그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타이틀 스폰서 없이 리그를 치렀다. 프로야구에 밀려 생중계도 거의 볼 수 없었다. 프로를 표방했지만 프로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현실이었다.

일부에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도 선수 인터뷰는 공식적인 것을 빼고는 철저하게 차단한다”고 말한다. 사실이다.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 미국 프로농구도 비슷하다. 정보는 제공하되 선수 인터뷰는 공식 행사 외에는 막는다. 하지만 KBO와 KBL은 팬을 모으기 위해 한국적인 상황에 맞는 변칙을 선택했고 성공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미디어를 파트너라고 한다. 경기장 밖 수많은 팬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통로가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로 불리는 배경에는 방송과 신문 등 미디어들의 생생하고 다양한 정보 제공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월드컵의 해를 맞아 K리그도 팬들의 관심을 끌 미디어 전략이 필요하다. 지난해 여름 축구기자단은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한국프로축구연맹에 KBO와 KBL 같은 미디어 시스템을 만들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아직 어떤 반응도 없다. 비슷한 시점에 이 같은 미디어의 반응을 접한 대한축구협회는 처음으로 훈련 시작 전 공동취재구역(믹스트 존)을 만들어 대표팀 선수와 인터뷰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에는 ‘FC 대한민국’만 있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온 것은 연맹의 미숙한 행정 탓이 아닐까.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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