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 스포츠클럽] 히어로즈 선수들의 기약없는 고통

  • Array
  • 입력 2009년 12월 28일 07시 00분


비상사태 발생시 국가 보위를 위해 국정 전반에 비상조치를 취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이 비상대권(非常大權)이다. 1970년대 대학시절 익숙했던 단어다.

더욱 생생한 기억 속의 단어는 위수령(衛戍令)이다. 육군 부대가 일정지역에 주둔하여 경비와 질서유지, 군기의 감시와 군에 딸린 시설물 등을 보호할 것을 정한 대통령령이다. 낭만 속 이어야할 대학시절은 최루탄과 데모로 거친 날들이 많았다.

오늘날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제발전 속에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뀐 유일한 국가란 부러운 시선 속에는 압축성장기에 있었던 갖가지 부작용, 사건의 과정이 있었다.

보고 느낀 시각에 따라 차이가 나는 역사평가는 전문가와 후세에 맡겨 두더라도 프로스포츠가 성행하고 유지되는 데는 경제력이 절대적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시엔 꿈꾸지도 못했던 피겨, 수영, 골프 등에서 김연아, 박태환, 박세리, 최경주, 양용은 등이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것은 경제력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프로야구 역시 상당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성행하고 유지될 수 있는 종목이다. 인구 1억명 이상, 1인당 국민소득이 적어도 2만달러 이상이 되어야만 정상적인 스포츠산업으로의 운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우선 인구가 반밖에 되지 않으니 다른 종목의 구단 운영도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홍보 효과를 뺀 수치상의 적자와 글로벌 시대에 국내에서의 기업 홍보가치는 이제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 역시 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프로야구계의 가장 큰 현안인 히어로즈 문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야구팬들과 타 종목 관계자들도 주목하고 있다. 기업홍보나 이익의 사회적 환원과도 거리가 먼 히어로즈는 옆에서 보기엔 우려와 걱정이 앞서기도 하고 더 많은 격려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갈림길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시즌 중에도 “우리 팀은 어떻게 됩니까?”, “소문이 사실입니까?”를 물어온 경우가 많았음을 고려하면 이번 기회에 뭔가 확실하게 문제점을 해결하고 또 구단도 명확하게 입장을 정리해 선수단이 더 이상 불안과 고통스런 날을 맞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같은 프로경력과 나이, 같은 포지션, 같은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가 부자 구단의 다른 선수와 연봉에서 큰 차이가 난다면 그건 문제가 아닌가.

부자 구단과 그렇지 않은 구단의 차이는 어쩔 수 없지만 우리 프로야구는 그런 불리함에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 따라서 구단의 의무 속엔 계약기간 동안 선수들의 기량 향상과 안정된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의무가 포함된다.

짧고 예상 가능한 기간의 고통은 선수단이 감수할 수 있지만 기약 없는 고통을 요구할 권리는 어느 구단에도 없다. 총재가 히어로즈 문제를 비상사태로 보거나, 미래에 대한 납득할만한 비전 제시가 없어 비상대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히어로즈는 신속하고 명쾌한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허구연 / 야구해설가. 오랜 선수생활을 거치면서 감독, 코치, 해설 생활로 야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즐긴다. 전 국민의 스포츠 생활화를 늘 꿈꾸고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