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연맹 ‘갈등싸움’…결국 허정무 감독 ‘골키퍼로 변신’

  • 입력 2009년 9월 2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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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말았다. 허정무(54)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직접 골키퍼 장갑까지 끼고 골문을 지키는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통상 감독이 훈련 도중 선수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한 두 차례 시범을 보이기도 하지만, 허 감독은 2일 파주NFC(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계속된 오전 훈련 내내 해외파 선수들의 강슛을 막고 또 막아내야 했다.

이처럼 허 감독이 골키퍼로 깜짝 변신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다. 다름 아닌 ‘대표 차출’을 둘러싸고 자존심 싸움을 벌인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 사이의 갈등이 원인이 됐다.

최근 협회와 연맹은 국가간 대항전(A매치)과 K-리그 일정 조정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협회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해준 A매치 데이 때 평가전을 치르는 것이 문제가 되느냐’는 입장이었고, 연맹은 ‘A매치 다음날 리그 경기를 치르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니 A매치 일정을 조정하라’며 맞불을 놓았다.

게다가 9월 호주전과 10월 세네갈전 등 두 차례 친선경기가 K-리그 일정과 충돌해 일단 어느 쪽이든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채 1년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 원만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불협화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연맹과 K-리그 구단들은 협회의 행정이 이기적이라 비난하며 ‘대표 차출 거부’ 파동까지 일으켰다.

허 감독은 국내선수들을 불러모으기 어려워지자 해외파 총동원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연맹의 완강한 입장에 막혀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으로 비친다.

이후 협회와 연맹 간 일촉즉발의 사태는 협회가 세네갈과의 친선경기를 애초 10월10일에서 10월14일로 연기하기로 양보하면서 봉합되는 듯 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연맹 측이 A매치 일정을 연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틀전에 소집할 수 있다’는 규정을 이용해 소속팀 선수들의 대표팀 차출을 3일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일과 2일 해외파-국내파가 따로따로 소집되는 초유의 ‘반쪽 짜리 훈련’이 현실화되고 말았다.

이에 당연히 볼멘소리는 나올 수밖에 없었다. ‘캡틴’ 박지성은 “이런 행정 수준에서 축구를 하는 게 슬프다”고 쓴소리를 했고, 이영표 역시 “연맹이 A매치 48시간 전 소집규정을 따졌다고 하는데 일찍 온 해외파들은 모두 바보인가. 프로연맹은 10년 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여기에 허 감독도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축구인 선배의 입장에서 선수들에게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가세했다.

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이 의견조율에 실패한다면 감독과 선수들만 탈이 날 수 밖에 없다. 결국 그 후유증은 축구계 모두가 떠 안아야한다. 하락세가 감지되고 있는 축구인기가 더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한 번의 해프닝은 웃고 넘길 수 있다. 협회와 연맹은 볼썽사나운 갈등싸움을 자제하고 한 발씩 물러나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볼 필요가 있다.

협회와 연맹은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일방적인 주장만 되풀이해서는 곤란하다. 현재까지 상황으로만 본다면 축구협회와 연맹의 지도력과 행정력은 모두가 낙제점이다. 양측 모두 협상에 실패했다. 이는 축구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플랜과 대원칙이 정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협회는 더 이상 국가 대표 경기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연맹의 희생만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1년 농사가 걸려 있는 프로축구의 중대한 행사가 눈 앞에 있는 점을 감안해야한다.

협회와 연맹 모두 서로에게 협조해야하지만 각각의 상황에 맞춰 경중을 달리 해야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평가전이 앞으로 국가대표 운영에 더 이상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고비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협회는 혹 과거 국가대표 우선주의라는 일방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지 돌이켜 보아야한다.

협회나 연맹 모두 일방적인 주장은 곤란하다. 얼마든지 협의할 수 있다. 최근 사태를 놓고 협회와 연맹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문전 앞에서 골을 넣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골 결정력을 보는 듯이 한심할 뿐이다. 선수 차출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집단에게 어떻게 장기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동아닷컴 김진회 기자 manu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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