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권익 보호” vs “개인사업자가 웬 노조”

  • 입력 2009년 4월 29일 02시 59분


■ 프로야구선수협-KBO ‘노조 설립’ 마찰

프로야구선수협회가 28일 노동조합 설립 추진을 선언했다. 아직은 선수들이 얼마나 참여할지 불투명한 단계이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은 ‘노조 불가’ 방침을 밝히고 있어 마찰이 예상된다. 프로야구 노조 설립을 둘러싼 쟁점들을 알아본다.

○ 왜 하필이면 시즌 중 노조 얘기가 나왔을까

프로야구가 개막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서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2000년 선수협의회가 생길 때도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비시즌 때였다.

이에 대해 선수협은 더는 시기를 미룰 수 없다는 견해다. 손민한 회장(롯데)은 “지난달 신임 KBO 총재 앞으로 자유계약선수(FA) 제도 개선, 최저 연봉 인상 등 선수 권익과 관련한 11개 항목의 제도 개선안을 보냈지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 끝난 이후 답을 주겠다고 해놓고는 응답이 없다. 이전에도 끊임없이 대화를 요구했지만 묵살됐다”고 말했다. 권시형 사무총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 개인사업자가 노조 설립 가능할까

KBO와 각 구단은 일단 지켜보겠다는 반응이다. KBO 이상일 총괄본부장은 “상황을 파악 중이다. 30일 이사회가 열리는데 그때 8개 구단 사장들이 이 문제를 논의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구단 사장은 “일단 노조 설립을 이슈화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 같다. 대응하면 되레 선수협의 의도에 말려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반대다. 일단 개인사업자가 노조를 만들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선수협 법률자문단 이승태 변호사는 “선수 신분이 형식적으로 개인사업자인 것은 맞지만 이는 과세 편의를 위한 것이다. 선수들은 엄연히 구단의 통제를 받는 피고용인이다. 심판들도 개인사업자 신분이지만 지난해 노동청에서 근로자로 인정한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 노조가 되면 뭐가 달라질까

선수협의 노조 전환 시도는 교섭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결성된다면 선수 노조는 법적으로 단체행동권과 협상권을 보장받는다. 그동안 선수협은 각종 현안에 대해 협상과 대화를 제안했지만 KBO가 받아줄 의무는 없었다. 선수협이 노조로 전환하면 KBO나 구단을 상대로 협의에 그쳤던 교섭 수준이 협상으로 강화된다. 이해관계가 어긋날 때는 최악의 경우 파업도 가능하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노조 관련 선수협 주장 Q&A▼

왜 시즌 중 노조를 만들려 하나Q:

A:계속 무시당해 더는 미룰 수 없다

Q:600만 관중 때까지 유보하기로 했는데

A:사단법인 유보다,노조와는 개념이 다르다

Q:개인사업자가 노조를 만들 수 있나

A:선수들은 구단의 통제를 받는 근로자다

Q:당장 어떤 절차를 밟을 것인가

A:팀장 2명씩 위촉해 추진위원회 결성

Q:노조가 되면 달라지는 것은

A:단체행동권-협상권 보장으로 위상 강화

▼1988년 첫 시도… 2000년 다시 선수협파동 불러▼

■ 선수단체 둘러싼 갈등의 역사

프로야구선수협회의 노조 설립 추진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사 성격의 단체 설립 시도가 있었던 과거에는 어땠을까. 선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 결성 시도로 선수들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영광보다는 상처가 더 컸다. 시도가 있을 때마다 각 구단이 방출 카드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처음 선수회 결성이 시도됐다. 롯데 최동원과 김용철 등이 선수회 결성을 주도했지만 결과는 완패로 끝났다. 괘씸죄에 걸린 최동원과 김용철은 두 달 뒤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제아무리 거물급 선수라도 선수회 결성 운운하면 쫓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구단이 보여줌으로써 선수회 결성은 무산됐다.

2000년 1월 한화 송진우를 초대 회장으로 한 선수협이 창립됐다. 하지만 구단의 반응은 12년 전과 마찬가지였다. 각 구단은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한 75명 전원을 방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문화관광부가 중재에 나서 시즌이 끝난 뒤 선수협을 결성하기로 구단과 선수 측이 합의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2월 집행부가 선수협 재결성을 시도하자 각 구단은 이번에도 송진우를 비롯한 주동자 6명을 방출키로 했다. 이때 역시 문화부가 중재에 나섰고 주동자 6명에 대한 방출 철회와 선수협 구성 인정 등 5개 항에 양측이 합의하면서 사태는 마무리됐다.

선수협 구성으로 선수들이 얻은 성과라면 구단에 맞서 선수의 이익을 대변할 공식 창구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선수 최저 연봉을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끌어올린 것과 외국인선수 출전을 팀당 2명으로 제한해 놓은 것도 선수협이 거둔 성과라 할 수 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미국 - 선수동맹 창설 68년만에 노조 출범

일본 - 1985년 설립… FA기간 줄여

야구 선진국 미국과 일본은 이미 선수 노조가 결성됐다. 하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다. 구단과의 마찰, 연이은 파업 등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미국은 1885년 노조의 전신 격인 선수동맹을 창설했다. 하지만 구단의 방해와 선수들의 무관심 등으로 제자리걸음을 계속했다. 선수 노조가 결성된 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아메리칸베이스볼 길드(조합)가 생겨 연봉 하한제와 연금제를 관철한 뒤 1953년에야 이뤄졌다.

미국은 1966년 철강노조 출신 쟁의 전문가 마빈 밀러가 노조대표를 맡으면서 일대 변혁을 맞았다. 자유계약선수(FA)와 연봉조정신청제도가 도입된 것. 그가 재임한 1966∼1982년에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은 1만9000달러(약 2500만 원)에서 24만 달러(약 3억2000만 원)로 12배 넘게 올랐다. 노조는 1981년 50일간 파업을 주도했고 1994년에는 샐러리캡(연봉상한제) 도입에 반대해 파업을 하면서 월드시리즈를 무산시키기도 했다.

일본은 1980년 선수회를 발족시켰다. 노조로 탈바꿈한 것은 1983년 롯데 구단이 다카하시 히로시를 일방적으로 해고하면서 비롯됐다. 친목 모임만으로는 힘들다고 여긴 선수들은 2년 뒤 선수 노조를 만들었다. 1993년에는 FA 자격 획득 기간을 10년에서 9년으로 줄이기도 했다. 선수회는 사단법인과 노조 두 가지 형태로 운영된다. 사단법인은 야구교실 등 공익사업을 하고 노조는 선수들의 권익 보호와 처우 개선 업무를 맡고 있다.

미국과 일본 노조는 구단주와 동등한 위치에 있다. 다른 구단으로의 이적을 원천 봉쇄한 FA 자격 획득 시한과 임의탈퇴 공시 등 악법은 남아 있지만 국내에 비해 선수들의 목소리는 훨씬 높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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