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가 간다] 女대표팀과 함께 한 컬링

  • 입력 2009년 3월 4일 08시 11분


2월, 강원도 평창에서 펼쳐진 바이애슬론세계선수권에 이어 3월 강릉에서는 여자컬링세계선수권이 열린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2010동계올림픽을 평창에서 열기 위한 수순으로 동계종목 세계선수권을 잇따라 유치해 놓았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야 이제 걸음마 단계지만 캐나다와 유럽에서 컬링은 인기 스포츠다.

여자대표팀 정영섭(52) 감독은 “컬링을 한 번만 해본다면,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렇다면 기자부터라도. 여자대표팀의 특별레슨을 약속받았다. 2월24일, 태릉선수촌 컬링장으로 향했다.

○“컬링은 왜 안 오나 했어요.”

“우리 종목은 왜 한 번 안 오나 했어요.” 의정부 회룡중학교의 한윤수 감독이 스포츠동아의 애독자란다. 어깨가 으쓱.

국내의 국제규격 컬링장은 태릉과 경북 의성에 2곳. 그나마 태릉에는 2개 시트, 의성에는 4개 시트뿐이다. 태릉에서는 여자대표팀 뿐만 아니라 의정부 송현고등학교 선수들도 함께 훈련을 하고 있었다. 대표팀은 오전 9-12시, 오후 3-6시까지 컬링장을 사용한다. 후배들은 빈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컬링대표팀은 모두 경기도체육회 소속. 컬링은 단체 경기라, 팀 전체를 대표로 선발한다. “한기가 느껴지시죠? 컬링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그래도 태극마크를 달고 있으니 자부심만은 대단하지요.” 컬링장에 들어서자 온 몸이 오싹해졌다. 평균 온도는 3℃에 불과하다.

○올록볼록 엠보싱 빙판

오후 2시50분. 아이스킹이라는 이름의 기계로 얼음을 깎아 평탄화시킨다. 그 다음 얼음판에 물을 뿌리면 물방울이 바로 얼어붙어, 얼음판 위에 돌기가 생긴다. 이 엠보싱을 ‘페블(Pebble)’이라고 부른다. 페블이 없으면 얼음판에 마찰력이 없어 스톤이 그냥 흘러내린다. 마치 물 컵이 탁자위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것과 같다. 스톤의 속력이 더 필요하면 브러시로 페블을 깎아 마찰을 줄인다.

컬링은 19.68kg 규격의 스톤을 42.07m 규격의 빙판 위에 미끄러뜨려서 하우스라고 불리는 1.83m 반경 원 안 표적에 넣는 스포츠다. 스톤을 원 중심에 더 가까이 붙인 팀이 승리한다. 각 팀은 4명으로 구성되며, 1엔드에서는 양 팀이 4개씩 총 8개의 스톤을 던진다. 경기는 총10엔드까지. 스톤을 잘 컨트롤하기 위해, 한 엔드가 끝나면 다시 페블을 만든다.

○넘어지고, 깨지고. 콧물은 주르르

컬링의 주요장비는 스톤과 신발, 그리고 브러시. 최민석(30) 코치가 컬링화를 꺼내왔다. 컬링화는 왼쪽 발에 덮개가 있다. 덮개를 벗기면 매끄러운 면이 나타난다. 스톤을 미는 동작에서 왼쪽 발이 빙판 위를 더 잘 미끄러지게 하기 위함이다. 가격은 20만-50만 원대.

‘딜리버리’라고 불리는 기본동작부터. 딜리버리는 스톤을 하우스 안으로 밀어 넣기 위해 빙판 위를 미끄러지는 동작이다. 일단, 왼발의 덮개를 벗겨냈다. 뒤뚱뒤뚱. 중심잡기조차 힘들다.

“딱 2시간 뒤에 국가대표 선수들과 실전 경기 할 테니 열심히 배우세요. 시범조교 이리와.” 정영섭 감독이 반대편 하우스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신수연(18·송현고)을 불렀다. 신수연은 마치 왼발에 롤러신발을 신은 듯, 40m를 미끄러져왔다.

우선, 스톤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에는 브러시를 든다. 제 자리에 쪼그려 앉아서 엉덩이를 살짝 들고, 스톤을 몸쪽으로 가져간다. 그 다음은 왼발로 슬라이딩. 슬라이딩의 순간에는 왼 무릎을 가슴 쪽으로 굽히고, 오른발은 뒤로 뻗는다. 군대에서 무릎앉아 자세가 안돼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넘어지고, 깨지고. 빙판의 한기가 콧잔등을 때려 콧물이 주르르 흘렀다.

스톤은 손목으로 돌리면서 밀어야 한다. 회전이 있어야 직선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10시에서 12시 방향으로 회전시키는 것을 인턴(In-turn), 2시에서 12시 방향으로 돌리는 것을 아웃턴(Out-turn)이라고 한다.

○집에서도 빗자루질 좀 할걸

“이제 얼추 자세가 나오네. 다음은 스위핑.” 동료선수의 손에서 스톤이 떠나면, 상황에 따라 브러시를 사용한다. 스톤이 첫 번째 라인을 지나는 순간부터 두 번째 라인까지 3.8초가 걸리면, 스톤은 하우스 정 가운데에서 멈춘다. 스위퍼는 초시계로 스톤의 속력을 감지하고 있다가, 통과시간이 3.8초가 넘으면 빗자루질로 페블을 지워나간다. 3.8초가 안된다면 굳이 브러시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닦고, 또 닦고. 집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빗자루. 이래서 가사노동의 분담이 필요하다. 양 어깨가 아파온다. “브러시를 빙판위에 밀착시키고 문질러야지. 안 그러면 브러시가 그냥 날아간다니까.” 정 감독의 호통소리. 싸늘하던 공기가 뜨거워졌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넘치는 박진감, 단 뒤통수는 조심하세요

대표팀과의 실전. 컬링은 4:4 경기지만, 인원문제로 3:3으로 편을 짰다. 김미연(29) 김지선(22)과 한조. 양 팀 인사. “굿 게임.”, “네?”, “잘하자고요.”

첫 번째 투구자는 리드, 두 번째는 세컨드, 세 번째는 서드. 마지막 투구자는 스킵이라고 부른다. 스킵은 하우스 안에서 팀의 작전을 지시하는 중대한 역할을 맡는다.

첫 번째 투구자로 나섰다. 부드럽게 손에서 스톤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아무도 스윕을 하지 않았다. “어, 왜 안 해요?” 긴장해서 스톤을 너무 강하게 놓은 것이 문제였다. 스톤은 하우스를 지나 링크 끝에 박혔다. 아웃.

남는 것은 힘뿐. 빗자루 질이라도 잘하자. 김지선이 투구자로 나섰다. 스킵인 김미연이 뭐라고 소리친다. “허리, 허리” 허리를 더 숙이라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사실은 ‘Hurry(서둘러)’였다. “12, 11, 10….” 이건 또 무슨 말. 선수들은 1부터 12까지 스톤의 강도를 조절한다. 12개의 다른 감각으로 스톤을 놓는 셈이다. 스톤의 속도를 서로 약속된 숫자로 확인해 스윕의 강도를 조절한다.

“빨리, 빨리.” 스킵의 지시가 떨어졌다. 질주하는 스톤의 앞길을 양팔이 끊어져라 닦았다. 스톤이 더 빨라졌다. 다리의 움직임에도 가속이 붙었다. 다리가 꼬였다. 공중에 몸이 ‘붕.’

“꽝!” 엄청난 소리에 놀라 주변을 둘러보니, 컬링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쪽을 향하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정확히 머리부터 떨어지던데….” 솔직히 아팠지만, 창피해서 금세 일어났다. 애꿎은 머리만 긁적긁적. 뒤통수는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 다음에는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1엔드는 패배. 2엔드는 스킵의 마지막 투구로 역전승. 컬링은 후순 공격이 훨씬 유리하다. 하우스 안의 상대스톤을 밖으로 쳐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A팀 스톤 4개가 원 중심 근처에 있다고 하더라도, B팀의 스톤 1개가 원의 정중앙에 있다면 B 팀의 1-0 승리다. 그래서 컬링에서는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역전의 가능성과 넘치는 박진감. 단, 뒤통수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태릉|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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