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정대 44일간의 사투]"여기는 남극점…더 갈곳이 없다"

  • 입력 2004년 1월 13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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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박영석씨(41)가 이끄는 원정대가 13일 오전 11시 남극점을 밟았다. 동아일보 후원아래 지난해 11월 30일 남극 북서쪽 해안의 허큘리스를 출발한 지 44일 만이다. 이는 무지원탐험 세계 최단시간 기록. 남극점 표지판 앞에서 썰매 위에 태극기와 동아일보 사기를 걸고 만세를 부르는 이현조 박영석 오희준 강철원 이치상 대원(왼쪽부터). 왼쪽 뒤 성조기는 미국 아문센-스콧 연구기지의 깃발이다. -사진제공 남극점 원정대
산악인 박영석씨(41)가 이끄는 원정대가 13일 오전 11시 남극점을 밟았다. 동아일보 후원아래 지난해 11월 30일 남극 북서쪽 해안의 허큘리스를 출발한 지 44일 만이다. 이는 무지원탐험 세계 최단시간 기록. 남극점 표지판 앞에서 썰매 위에 태극기와 동아일보 사기를 걸고 만세를 부르는 이현조 박영석 오희준 강철원 이치상 대원(왼쪽부터). 왼쪽 뒤 성조기는 미국 아문센-스콧 연구기지의 깃발이다. -사진제공 남극점 원정대
“여기는 남위 90도 남극점,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한 발짝도 더 떼놓을 힘이 없었다. 박영석(朴英碩·41·동국대 산악부OB, 골드윈코리아) 대장도, 대원들도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잠시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어깨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덥수룩한 수염을 타고 흐르다 금세 고드름이 됐다.

“대한민국 만세다. 우린 해냈다.” 박 대장이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다. 우린 해냈다.” 대원들도 우렁차게 외쳤다.

13일 오전 11시(한국시간). 동아일보가 후원하는 남극점 원정대가 드디어 남극점을 밟았다. 지난해 11월 30일 남극대륙 북서쪽 해안 허큘리스(남위 79도59분)를 떠난 지 44일 만이다. 이는 99년 12월 영국-호주 연합팀이 세운 종전기록 48일을 나흘 앞당긴 세계 최단기록.

대원들이 주파한 거리는 1134.7km. 연평균 영하 55도의 혹한과 초속 20m가 넘는 강풍 속을 걸으며 대원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었다. 그냥 걸어도 힘든 마당에 130kg이 넘는 썰매까지 끄느라 대원들은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었다. 박 대장은 원정기간 내내 설사에 시달렸다. 막내 이현조 대원(32)은 정강이 피로골절, 오희준 대원(34)은 발목을 다쳐 원정 내내 고생했다. 손발 동상은 기본.

무엇보다 대원들을 괴롭힌 것은 배고픔. 주식은 찹쌀과 야채, 고기 등을 말려 만든 건조식품으로 5명으로 구성된 원정대 한 끼 식량이 800g에 불과했다. 이동 중 잠깐 먹는 점심은 과자 초콜릿바 등으로 때웠다. 이 바람에 체중이 10여kg씩 빠졌다.

걷다가 힘이 들 때마다 대원들은 둘러앉아 먹고 싶은 음식 이름을 댔다. 이치상 대원은 ‘막걸리 한 사발과 홍어회 한 접시’를 입에 달고 다녔고 강철원 대원은 ‘딸기우유 3L’를 되뇌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데도 대원들은 왜 포기하지 않았을까.

“즐거운 일이 없을 우리 국민에게 뭔가 위안거리를 안겨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단 1%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최선을 다하자고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서로 약속했습니다.”

그랬기에 하루에도 수없이 썰매와 함께 나동그라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

이날 남극점에 도착한 대원들의 모습은 그동안 겪은 고생을 짐작하게 했다. 퉁퉁 부르튼 입술에 세수 한번 못한 데다 수염까지 길게 자란 얼굴은 험상궂기 짝이 없었고 땀에 전 옷에선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도 대원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표정이었다.

대원들은 남극점 표지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미국의 남극연구기지인 아문센-스콧기지를 방문했다. 남극점에 도착한 각국 원정대가 반드시 방문하는 코스다. 허큘리스를 떠난 뒤 한달반 만에 처음 마신 커피 한잔이 그렇게 향기로울 수 없었다는 게 대원들의 말.

“남극점을 밟는 순간 지난해 북극점 도전에 실패한 뒤 엉엉 울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남극에서 별을 땄으니 다시 북극으로 가야지요.”

대기록을 달성한 박 대장의 마음은 벌써 북극에 가 있다. 그는 이제 세계 최초의 산악그랜드슬램(히말라야 8000m급 14봉, 세계 7대륙 최고봉, 세계 3극점을 모두 밟는 것) 달성에 북극점 하나만을 남겨놓고 있다.

원정대는 경비행기편으로 1000여km 떨어진 베이스캠프 패트리엇힐로 이동한 뒤 수송기편으로 칠레 푼타아레나스로 가 귀국할 예정이다.


원정대원들이 남극점에 도착한 뒤 감회에 젖었다. 남극 표시 기둥을 잡은 박영석 대장과 표지판에서 남극점을 가리키는 이현조 대원(왼쪽). 박 대장이 남극점 상징물의 하나인 실버볼에 이마를 댄 채 원정 성공을 고마워하고 있다. -사진제공 남극점원정대


전창기자 jeon@donga.com

▼중간보급 없이 도달 84년동안 29명뿐 ▼

남극탐험 역사는 100년이 채 안 된다. 로알 아문센(사진)이 이끄는 5명의 노르웨이 탐험대가 1911년 12월 14일 59마리의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인류 최초로 남극점을 밟았다. 그 후 지난해까지 남극점을 밟은 사람은 모두 158명.

미국인 리처드 버드는 1929년 11월 28일 포드사가 제작한 3발기 플로이드 베넷으로 남극점까지 첫 비행에 성공했다.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1957년 3명의 대원과 함께 농장용 트랙터를 타고 남극점에 도착했다. 그는 1953년 5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50m)에 처음 오른 인물. 1986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봉 완등 기록을 세운 라인홀트 매스너(60·이탈리아)도 1989년 파라세일을 이용해 남극점을 밟았다.

중간 보급을 받지 않는 무지원 탐험에 처음 성공한 사람은 얼링 가제(41·노르웨이). 그는 1993년 1월 7일 51일 만에 남극점에 도착했다. 지난해까지 무지원 탐험 성공자는 29명뿐. 남극점 탐험은 출발지점이 중요하다. 94년 허영호(50) 원정대는 44일 만에 남극점을 밟았지만 남극대륙 해안가에서 46km 떨어진 패트리엇 힐에서 출발하는 바람에 국제적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번에 박영석 원정대에 앞서 42일 만에 남극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하는 여성 산악인 피오나 소윌(38·영국)도 해안가에서 30km 떨어진 곳에서 출발해 기록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창기자 jeon@donga.com

▼盧대통령 축하전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3일 남극점 도달에 성공한 산악인 박영석 탐험대장과 대원들에게 축하전문을 보내 “강인한 도전정신과 불굴의 정신력으로 남극점을 밟은 박 대장과 대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이 자랑스러운 쾌거를 온 국민과 함께 축하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이번 성공은 그동안 흘린 많은 땀과 노력이 이뤄낸 결실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더욱 정진해서 세계 최초의 산악인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여 달라”고 당부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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