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그후 1년]‘돈먹는 하마’ 월드컵 경기장

  • 입력 2003년 5월 29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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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경기장으로 손꼽혔던 제주 월드컵경기장. 그러나 지금은 개조 공사 관계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경기장으로 손꼽혔던 제주 월드컵경기장. 그러나 지금은 개조 공사 관계로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6월 온 국민의 함성이 메아리쳤던 월드컵경기장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있다.

2002한일월드컵축구가 끝난 지 이제 1년. 건설비만 1조8178억원이 든 전국 10개 월드컵경기장은 대부분 운영비조차 건지지 못한 채 적자에 허덕이며 지자체의 부담이 되고 있다.

지난해 개장이후 올 4월까지 낸 적자 총액은 180억원. 고스란히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이에 각 지자체는 흑자를 내기 위한 갖가지 청사진을 내놓고 있지만 실현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자랑스러운 기념물은커녕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월드컵경기장의 현주소를 점검해본다.

○경기장 이자부담만 연간 수십억원

월드컵이 끝난 뒤부터 지난해 말까지 6개월 동안 10개 월드컵경기장이 낸 적자는 120억원이 넘었다. 올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서울월드컵경기장이 흑자로 전환했다는 점. 반면 지방 소재 9개 경기장은 지난해에 이어 하나같이 10억∼20억원대의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표 참조> 여기에 경기장 건설로 떠안은 지자체별 부채는 수백억에서 1천억원대에 이르러 그 이자부담만도 연간 수십억원에 이르는 실정이다.

10개 월드컵 경기장 올 예상 수지 (단위:원)
구장수입지출수지
서울107억∼120억72억▲35억∼48억
부산480만27억7400만▼27억 6080만
대구21억 4000만30억▼8억 6000만
대전1000만17억▼16억 9000만
광주1억15억8000만▼14억 8000만
인천20억56억(야구장
관리비 포함)
▼36억
전주2억17억▼15억
울산20억28억▼8억
수원18억 7000만40억▼21억 3000만
서귀포6500만7억 1900만▼6억 5400만
190억 8980만∼
203억 8980만
310억 7300만▼106억7480만∼
119억7480만
수입과 지출은 각 지자체의 계산법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음.
▲흑자 ▼적자

부산 대구 울산 수원 대전 전주 광주 등 연고 프로축구단이 있는 곳은 사정이 나은 편. 프로축구경기가 열려 관중수입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희비가 엇갈린다. 대구는 올해 출범한 연고구단 대구FC로부터 거의 사용료를 받지 못하고 있어 실속이 없다. 군팀인 상무를 연고팀으로 하는 광주나 재정이 취약한 대전시티즌을 연고구단으로 하는 대전도 비슷한 처지다.

가장 심각한 곳은 제주와 인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들은 서귀포의 제주월드컵경기장은 월드컵이 끝난 뒤 한번도 문을 연 적이 없다. 제주경기장은 지난해 태풍으로 날아간 지붕막 공사를 막 시작해 지금은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다.

인천 문학경기장도 연고구단이 없는데다 문화행사 등을 유치해도 서울에 밀려 관객동원이 어렵기 때문에 거의 놀리고 있는 형편. 그러다 보니 올 예상 적자폭도 각 구장 가운데 가장 큰 36억원이나 된다.

○현실성 없는 장밋빛 청사진

각 지자체는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저마다 청사진을 마련해놓았다. 골프연습장이나 스포츠센터 쇼핑몰 등을 유치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이 청사진의 상당수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거나 실현가능성이 적다는 점. 전주경기장엔 골프장 외에 사우나 예식장 등이 들어설 계획이나 도심에서 10km나 떨어져 있어 상권이 형성되기 어렵다. 또 대전시는 대형 할인매장, 자동차 전용극장 유치를 추진하고 있지만 그린벨트 해제가 선결과제.

인천시는 대형 쇼핑몰과 골프연습장 유치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정작 내부에서 ‘주변 교통난을 부채질한다’며 반대하고 있는 형편. 광주시는 경기장에 경륜장을 유치해 해마다 300억원의 수입을 올리겠다고 하나 인접한 나주시가 한발 앞서 시민차원의 유치운동에 나서는 바람에 실현가능성은 반반이다. 제주는 관광객 유치시설을 지으려고 해도 서귀포 시내 상권과 피할 수 없어 이래저래 진퇴양난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성공모델

서울월드컵경기장은 10개 경기장 가운데 사후 활용도에서 유일한 성공 모델이다. 지난해 약 24억원의 적자를 낸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올해 예상지출 72억원에 예상수입 107억∼120억원으로 35억∼48억원의 흑자를 낼 전망.

서울월드컵경기장이 흑자로 전환하는 데는 지난 23일 문을 연 ‘월드컵 몰’이 효자 노릇을 했다. 대형 할인점, 스포츠센터, 복합 영상관, 예식장 등 8개 업체가 입점해 이들이 내는 임대료만 매년 110억원(올해는 76억원)에 이른다.

주경기장 보조구장을 활용한 체육 문화 행사 수입도 짭짤하다. 최근엔 오페라 ‘투란도트’ 공연을 유치해 17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서면서 생긴 긍정적인 현상도 적지 않다. 주말과 휴일마다 인라인스케이트 사이클 마라톤을 즐기는 인파가 몰리는 등 시민들의 여가활용 공간으로 자리잡은 것이 그 첫째다. 이 때문에 ‘일단 시민이 참여하는 문화체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적자가 날 경우 공익적 차원에서 지자체가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적자운영의 부담은 모두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 부담이 계속될 경우 월드컵경기장은 더 이상 ‘자랑스러운 기념물’이 아닌 ‘온 국민의 애물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체육과학연구원의 유지곤박사는 “각 지자체가 구상하고 있는 수익사업이라는 게 쇼핑몰 골프연습장 예식장 유치 등 천편일률적이다. 민간 전문업체 등을 활용해 당장은 적자가 나더라도 장기플랜을 세워 공공성과 수익성을 잘 조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종합·김화성기자 mars@donga.com

▼[월드컵 그후 1년]▼

- ‘4강 신화’ 1년… 다시 모인 광장의 주역들

●일본 월드컵 경기장은 지금…10곳중 2곳만 흑자

일본은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10개 경기장을 짓거나 개축했다. 대회가 끝난 뒤를 고려해 축구 전용경기장은 3개만 지었고 나머지는 종합경기장이지만 상당수는 운영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 해당 지자체는 건설시 발행한 채권의 변제 시기가 돌아와 고민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기장을 영리 목적의 상업 시설처럼 취급해 단순하게 흑자냐, 적자냐 만을 따져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적자 운영 고민=시즈오카현은 지난해 월드컵을 앞두고 298억엔(약2980억원)을 들여 5만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 경기장을 건설했다. 월드컵 이후 관중석이 찬 경우는 인기 가수 그룹 SMAP과 B'Z의 콘서트 때뿐이다. 프로축구 J리그 유치도 여의치 않아 지난해 3억9600만엔(약39억6000만원)의 운영적자를 기록했다.

10개 경기장 가운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흑자기 기대되는 곳은 프로야구도 열 수 있도록 설계해 현재 프로야구팀 본거지로 활용되는 홋카이도의 삿포로돔과 건설 당시부터 민간이 책임경영을 하기로 했던 고베 윙스타디움 정도다. 반면 다른 경기장은 가동률이 나빠 연간 1억(10억원)~5억엔(5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지자체는 운영 적자 외에 채권 변제 부담까지 안고 있다. 10개 지자체가 발행한 지방채권 총액은 2039억엔(약 2조 390억원). 변제기간은 최장 30년인데 일부에서는 기간 내 변제가 불가능해 ‘빚 얻어 빚 갚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순기능 평가=니가타는 지난해 월드컵 경기장이 완성되기 전 만해도 프로축구 인기가 없었다. 2001년 시즌 관중은 고작 8만여명. 그러던 것이 지난해에는 47만여명으로 늘었다.

오이타현은 경기장 운영 적자만을 거론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일반 상업시설과 다른 공공시설을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원 공공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되면 적자를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

시즈오카현은 요코하마 국립경기장을 결혼식장으로 개방, 2시간에 25만엔(약 250만원)으로 대여하거나 운동장을 갖추지 못한 도심 초등학교에 빌려주고 있다. 미야기현도 결혼식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활용 대책=고베시는 민간회사에 운영을 맡겨 흑자가 예상된다. 시즈오카현과 이바라키현도 민간에 위탁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요코하마시는 경기장 명명권을 민간기업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지난해 도쿄 야구장이 한 식품회사에 5년간 이름을 붙이는 값으로 12억엔(120억원)의 부수입을 올린 사례를 본 뜬 것이다.

도쿄=조헌주 특파원 hanscho@donga.com

■강준호 교수 “경기장을 여가생활 중심지로 만들라”

월드컵경기장의 성공적인 활용은 컨텐츠, 시설의 질, 접근성, 인구, 지역문화의 수준, 대체경쟁시설 등에 좌우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는 지자체가 같은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식의 전환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각 지자체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된다.

먼저 단순히 경기장 운영비용을 충당하는 차원이 아니라, 월드컵경기장과 그 주변을 지역의 스포츠, 문화예술, 여가생활의 중심지로 발전시키겠다는 넓은 시야와 확장된 사고, 그리고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월드컵경기장은 최고 수준의 스포츠인프라다. 월드컵경기장을 소유한 지자체는 이런 좋은 시설과 주변지역을 주 5일 근무제로 더욱 높아질 스포츠 및 여가문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부가적으로 지역문화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사용될 핵심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 지역개발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월드컵경기장의 활용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다음으로 컨텐츠중심적 사고가 요구된다. 있는 시설을 활용한다는 자세보다는 질 높은 스포츠, 문화컨텐츠를 개발하고 유치하는 것을 먼저 고민하고 시설은 그러한 컨텐츠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인식해야 한다. 지역특색에 어울리면서도 지역주민과 관광객의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컨텐츠가 중요하다. 컨텐츠중심의 사고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인문학적 상상력과 그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경영마인드를 동시에 요구한다.

강준호 서울대 교수·스포츠마케팅·본보 월드컵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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