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코오롱 장하준 감독 “올림픽 월계관 꿈★”

  • 입력 2003년 3월 23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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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선수와 떨어져 생활하면 결코 훌륭한 선수가 나올 수 없다”  원대연기자
“지도자가 선수와 떨어져 생활하면 결코 훌륭한 선수가 나올 수 없다” 원대연기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정하준 코오롱마라톤팀 감독(51)은 ‘돌쇠’같다. 말도 별로 없을뿐더러 자기 일 외엔 신경 쓰지 않는다. 틈만 나면 펴드는 게 마라톤 관련서적이다. 요즘은 인체의 에너지 생성과정을 배우기 위해 생리학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는 중이다. ‘한국마라톤 샛별’ 지영준을 키워낸 것도 이런 노력이 밑받침됐으리라. 18일 인사차 본사를 찾은 정 감독과 만났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동아마라톤이 끝난 16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12시간 동안 정말 오랜만에 단잠을 잤습니다. 여기 저기 인사도 다니고….”

정 감독은 마라톤이 아닌 멀리뛰기와 세단뛰기 선수 출신이다. 배재고 시절 전국체전에서 3관왕(멀리뛰기 세단뛰기 800m 계주)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가 코오롱마라톤감독이 된 것도 극적이다. 83년 그는 마케팅 요원으로 코오롱에 입사해 96년 애틀랜타올림픽까지 때로는 세일즈맨으로, 때로는 홍보 기획맨으로 현장을 누볐다. 그래서 요즘도 그를 코오롱의 유능한 영업사원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이 끝난 뒤 정봉수 감독님 부탁으로 마라톤팀 프런트를 맡은 게 계기가 됐습니다. 그때부터 정식으로 마라톤 수업을 받았어요. 당시 투병중이던 정 감독님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죠. 그리고 99년 저를 부감독에 임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오인환 코치(현 삼성전자 감독)와 이봉주 김이용 권은주 등 남녀 간판급 선수들이 모두 팀을 이탈해 버렸다. 육상계에선 이를 ‘코오롱 사태’라고 부른다.

##영원한 스승 정봉수감독…그러나 나의 길은 따로 있다

코오롱마라톤팀 숙소(강동구 방이동)에서 정 감독 집(강동구 둔촌동)까지는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러나 정 감독은 올 들어 딱 이틀밖에 집에 가지 못했다. 지난해엔 한 달 정도나 갔을까.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선수들과 숙소에서 함께 보낸다. 이것은 그의 스승 정봉수 감독의 지론.

“그렇게까지 할 게 있습니까?”

“지도자는 늘 선수와 같이 있어야 선수들의 습관, 성격, 컨디션 등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거기에 맞춰 훈련도 할 수 있는 거고요. 또 감독이 무너지면 팀 전체가 무너집니다.”

“부인과 자녀들이 섭섭해하지 않습니까?”

“제 아내는 저를 철석같이 믿습니다(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부인 주혜자씨는 ‘열심히 일하는 남편이 존경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동아마라톤에서 지영준이 좋은 성적을 내자 아이들이 먼저 ‘우리 아빠 정말 대단하다’고 전화해 주었습니다.”

정 감독은 술을 거의 하지 못한다. 담배는 99년부터 끊었다. 그의 지도 스타일은 정봉수 감독이 전수해 준 노하우에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을 가미한 것. 그래서 정봉수 감독 스타일과 다른 점도 많다. 정봉수 감독이 ‘나를 따르라’는 스타일이었다면 그는 팀워크와 대화를 중시한다.

“전 훈련일정을 반드시 코치들과 상의해서 짭니다. 코치들이 하는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것도 제 철칙입니다. ‘코오롱 사태’때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답답한 생각이 들 때도 있겠군요?”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그게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봉수 감독은 가끔 선수들에게 손찌검도 했다는데….” “그건 정봉수 감독님과 제가 다른 점입니다. 선수는 내 소유물이 아닙니다. 강제로 시키면 언젠가는 탈이 나게 돼 있습니다. 하다 하다 안되면 감독이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때리는 것만은 절대로 안됩니다.” “선수들 이성교제도 허용합니까?” “젊은이들 사랑같이 아름다운 게 어디 있습니까? 전 선수들을 믿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은 저를 믿고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만들고 싶은 게 꿈

어느 감독인들 안 그럴까마는 정 감독도 선수 욕심이 유난히 많다. 될 만한 ‘물건’을 보면 눈이 번쩍 뜨인다. 그는 자나깨나 ‘작은 머리에 가슴 두껍고 발목 가는’ 꿈나무를 찾으러 다닌다. 목표는 올림픽 제패. 코오롱팀엔 현재 지영준 조근형 김옥빈 등 11명의 선수가 있다. 이들 중에서 올림픽 월계관을 쓰는 선수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는 감독이란 숙명적으로 ‘속을 썩이고 또 썩이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풉니까?” “혼자 노래방에 가서 한 30여곡 발악하듯 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해집니다.” “18번은?” “태진아의 ‘애인’ 그리고 조용필 나훈아의 노래 전부.” “울고 싶을 땐?” “부모님 묘소나 김천의 정봉수 감독 산소에 가서 실컷 이야기도 나누고 울기도 합니다.” “정봉수 감독에겐 뭐라고 합니까?” “하실 일 다 안하고 먼저 가셨으니 나 좀 도와달라고 조릅니다.”

정 감독의 꿈은 더도 덜도 말고 ‘소박한 지도자’가 되는 것(그는 요즘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몇 번째 보고 있다). 꿈을 이루고 나면 아내와 조용히 살고 싶단다.

정 감독의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바깥양반한테 정말 서운한 점 없나요?” “음…이런 얘기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사실 그이에게 첫 번째는 선수들이에요. 아이들과 전 두 번째나 될까 말까….”

김화성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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