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김우용, 가난 딛고 따낸 '눈물의 金'

  • 입력 1999년 10월 10일 19시 39분


“감독님….”

10일 오전 4시. 터키 앙카라에서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 김우용(28·평창군청)의 목소리는 벅찬 감격을 억누르지 못하고 시종 울먹였다.

그를 키워준 이건환감독(평창군청) 역시 “그래, 장하다”라고 하곤 금방 눈시울을 적셨다.

가난으로 찌들었던 20여년의 세월.

아버지 김정보씨(63)는 태어날때부터 왼손가락이 없는 조막손. 그 몸으로 막노동 날품을 팔아 연명해 왔다. 게다가 어머니 권점순씨(55)는 2년 전 중풍으로 쓰러져 반신불수의 상태.

포항에 살고 있는 형이 빚보증을 잘못 서 그나마 얼마되지 않는 전재산을 날려버리는 바람에 김우용은 60만∼70만원의 월급을 쪼개 생활비를 보태왔다.

어려서부터 평창군에서 폐가를 찾아다니며 ‘움막생활’을 한 김우용. 그의 소원은 “쫓겨다니지 않고 월세집에서라도 한번 살아보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레슬링 입문은 평창중학교 1학년 때. 신문배달을 하다 ‘평생사부’인 이건환감독의 눈에 띄었다.

평창중고와 용인대를 거쳐 평창군청에 적을 둔 김우용은 그동안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자유형 54㎏급에서 국내 강자가 워낙 많았던 탓.

국제대회 출전조차 어려웠지만 7월 국가대표선발전에서 문명석(주택공사) 등을 제치고 마침내 태극마크를 달았다. 세계선수권을 목표로 태릉선수촌에서 구슬땀 흘리기를 3개월.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99자유형세계선수권대회 첫판에서 김우용은 카자흐스탄의 말루엔에게 3―7로 패했다. 하지만 2회전 행운의 부전승과 3회전 테크니컬 폴승으로 본선에 진출.

미국과 러시아 불가리아 선수를 차례로 물리친 김우용은 10일 새벽 결승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아키로프를 태클과 하체굴리기 등 다양한 기술로 공략하며 4―0으로 승리, 마침내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이 자유형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93년 박장순(현 대표팀코치)이후 6년만이며 장창선(66년), 김종신(89년) 박장순에 이어 역대 4번째.

한편 장재성(24·주택공사)은 63㎏급 결승에서 테네프 엘브루스(우크라이나)와 연장전 끝에 1―3으로 져 은메달을 획득했고 양현모(28·태광실업)는 8강에 진출, 시드니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했다.

〈김상수기자〉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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