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에게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을 당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무속인’에게 회삿돈 약 66억 원을 건넨 전기용품 제조업체 전 대표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노유경)는 특정경제범죄법 위반(횡령) 혐의로 기소된 전직 전기용품 제조업체 대표 김모 씨(48)에게 지난달 28일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김 씨는 2019년 1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던 회사 자금 65억 8700만 원을 빼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에 따르면 사건은 김 씨의 당시 아내가 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 학부모였던 장모 씨와 심모 씨를 알게 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김 씨 부부는 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갔다.
장 씨와 심 씨는 김 씨 부부에게 “고위층 사주를 봐주는 유명 무속인이 있다”며 ‘조말례’라는 이름의 무속인을 소개했다. 김 씨 부부는 조말례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았지만, 실제로는 장 씨와 심 씨가 가상의 무속인 행세를 하며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김 씨는 문자메시지 속 무속인이 큰아들의 건강 상태 등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자 이를 믿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장 씨와 심 씨는 “제단에 바칠 돈이 필요하다”며 조말례의 지시인 것처럼 꾸며 김 씨에게 회사 자금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
김 씨는 이사회 승인 없이 회사 자금을 자신의 계좌로 옮긴 뒤 다시 장 씨와 심 씨 측에 송금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회사 직원에게 “급하게 쓸 돈이 필요하다. 이틀 안이나 월말에 다시 입금하겠다”고 말한 뒤 회사 계좌에서 2억 원을 송금받는 등 같은 방식으로 1년 넘게 회삿돈을 빼돌린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대표이사로서 회사 자금 관리 등 역할과 책임을 다했어야 함에도 무속인의 지시라는 말을 맹목적으로 추종해 1년 이상 거액을 횡령했다”며 “죄질이 매우 나쁘고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장 씨와 심 씨의 심리적 지배와 기망에 의해 범행에 이르게 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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