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숲’ 곶자왈에 봄이 올까요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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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 보전 및 관리조례’ 또 무산
생태-지질적 보전 가치 높은 숲… 보존법 제정 세번째 시도 실패
관리 지역에 따른 난개발 우려… 사유재산권 등 문제 얽혀 난항

제주 안덕면과 대정읍, 한경면 일대 곶자왈이 각종 개발 등으로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 안덕면과 대정읍, 한경면 일대 곶자왈이 각종 개발 등으로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3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영어교육도시 인근 제주올레길 11코스. 참식나무 등 상록수가 울창하고 바닥에는 고사리가 지천인 숲에 달콤한 듯 상큼한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꽃향기가 백리, 천리를 간다는 백서향이 하얀 부케 같은 꽃을 활짝 피웠다. 신비의 숲, 생명의 숲으로 불리는 ‘곶자왈’에 봄이 왔음을 알렸다. 이처럼 용암암괴에 숲이 형성된 곶자왈은 지하수의 생성 통로이기도 하다. 폭우가 쏟아지면 암괴 틈을 통해 순식간에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저장된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7km가량 떨어진 곶자왈은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활엽수, 키 작은 나무, 덩굴류 등이 빽빽하게 포진한 가운데 새순이 돋아나기 전이어서 온통 갈색으로 뒤덮였다. 곶자왈 숲을 개간해서 조성한 목장과 농지가 인접했고, 골프장을 만들려다가 터파기만 하고 그대로 방치한 개발 예정지가 황량하게 펼쳐졌다.

이 일대는 식생과 주변 환경이 다르지만 제주의 7개 곶자왈지대 면적 95.1km² 가운데 39.4%인 안덕-한경-대정-한림지대 37.5km²에 속하는 곳이다.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이 있기는 하지만 영어교육도시, 신화역사복합리조트, 골프장 조성 등으로 이미 상당 면적이 개발됐다.

이 같은 곶자왈에 대해 생태, 지질, 자원적 가치가 규명되고 있지만 관리, 보호를 위한 법규 및 제도적 장치는 미흡한 상황이다. 곶자왈 지대는 생태계 보전 3등급 또는 4-1등급에 포함돼 필지 면적의 30∼50%까지 산림 훼손이 가능한 곳이다. 곶자왈의 경계도 명확하지 않아 토지 이용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제주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주도 곶자왈 보전 및 관리조례’ 개정안을 마련해 제주도의회에 제출했으나 지난달 27일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2차례에 이어 3번째 시도였지만 결국 무산된 것이다. 법률의 위임 범위에 대한 해석 차이, 도민 공감대 부족 등을 이유로 부결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에 ‘곶자왈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번 조례 개정안에 보호지역을 보호·관리·원형훼손 등 3개 지역으로 세분화한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견 차이를 보였다. 2022년 제주도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곶자왈을 3개 지역으로 구분한다면 면적은 보호지역 33.7km², 관리지역 29.7km², 원형훼손지역 31.7km²로 추정되고 있다. 환경단체 측에서는 “원형훼손지역을 지정한 것은 개발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관리지역 설정 역시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곶자왈에 대한 정의도 논란이다. 제주특별법에는 ‘제주도 화산 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지대로서 숲과 덤불 등 다양한 식생을 이루는 곳’으로 규정했는데 조례 개정안에서는 이 내용과 함께 ‘곶자왈의 생성 기원에 근거한 화산분화구에서 발원해 연장성을 가진 암괴우세용암류와 이를 포함한 동일 기원의 용암류 지역’을 추가했다. 상위법의 정의와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문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곶자왈 보전지역에 포함되면 개발 행위에 대해 상당한 제약을 받기 때문에 사유재산권 행사와 관련한 갈등이 첨예하게 깔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법적 해석과 재산권 문제가 얽히면서 곶자왈 경계와 구역 설정에 대한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 것이다. 논란의 해법을 찾지 못하는 동안 곶자왈 훼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제주도의회에서 제기한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관련 전문가와 단체 등을 중심으로 여러 의견을 청취한 후에 방안을 제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곶자왈#관리조례#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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