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떠나 사회적 기업 창업… 사람을 변화시킬 때 보람 느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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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나눔]취업취약계층 채용하는 AI 기업 ‘테스트웍스’ 윤석원 대표 인터뷰
전체 직원의 28%가 취업취약계층… 발달-청각장애인 직원도 28명 고용
AI 데이터 검수 등 중요 업무 맡아… 퇴사율 낮고 관리 비용 적게 들어
작년 ‘임팩트 유니콘’ 기업 선정… SK 그룹에서 투자-홍보 등 지원

인공지능(AI) 프로그램 기업 테스트웍스의 윤석원 대표는 19일 서울 송파구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나 “장애인 근로자는 일반 
근로자보다 퇴사율이 매우 낮고 어느 정도 일에 숙련되면 관리 비용도 더 적게 드는 등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직원 
180명 중 28명이 장애인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인공지능(AI) 프로그램 기업 테스트웍스의 윤석원 대표는 19일 서울 송파구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나 “장애인 근로자는 일반 근로자보다 퇴사율이 매우 낮고 어느 정도 일에 숙련되면 관리 비용도 더 적게 드는 등 장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직원 180명 중 28명이 장애인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9일 오후 4시 반.

서울 송파구에 있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 기업 ‘테스트웍스’ 사무실에선 발달장애인 김태민 씨(30)가 차와 사람을 구별하는 자율주행 차량용 AI 프로그램을 검수 중이었다. 그는 “원래 대중교통 등 차량에 관심이 많았다”며 “일하는 동안에는 마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위층 사무실에는 청각장애인 직원들이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청각장애 탓에 보청기를 끼고 일하던 4년 차 이은비 씨(36)는 일정관리 및 검수, 프로젝트 리딩 업무를 맡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동물병원 등 여러 곳에서 일해봤는데 이곳 일이 제일 잘 맞는다”며 “평생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5년 설립된 테스트웍스는 발달장애인과 청각장애인 직원 28명을 고용한 AI 스타트업이다. 경력단절 여성이나 장기 실업자 등 취업취약계층 직원 22명도 고용 중이다. 테스트웍스의 취업취약계층 직원은 전체 직원(180명)의 약 28%에 달한다. 이곳에서 장애인 직원들은 단순 보조 업무가 아니라 자율주행 등 AI 소프트웨어 데이터를 가공·검수하는 중요 업무를 맡는다.

지난해 7월 기준 테스트웍스의 ‘임팩트 투자’(재무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동시에 고려한 투자) 유치액은 총 116억 원에 달한다. 창업자 윤석원 대표(52)는 “단순히 돈을 벌거나 승진하는 것을 넘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며 사회적 기업을 창업한 이유를 설명했다.

● ‘경단녀’ 교육 봉사하다 창업 결심
윤 대표는 마이크로소프트(MS), 삼성전자 등 굴지의 정보기술(IT) 기업을 거치며 ‘잘나가던’ 연구원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 사직서를 내고 사회적 기업을 창업한 것은 개인적 경험 때문이었다.

2015년 윤 대표는 서울시 은평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일하던 지인의 의뢰로 경력단절 여성 대상 소프트웨어 테스터 양성 교육에 참여했다. 교육생들은 평균 합격률이 절반 남짓인 국제 SW 자격시험에서 80% 이상 합격할 정도로 열정과 실력이 출중했다. 윤 대표는 수강생들을 기업에 취업시켜주려 했지만 “정규직 채용은 곤란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경력단절 기간이 10년 넘는 구직자를 흔쾌히 정규직으로 채용해줄 회사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윤 대표는 ‘차라리 내가 회사를 세워 채용하자’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다.

윤 대표는 “연구원으로 승진할수록 마음은 공허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주변에 말하자 ‘퇴직 후 하라’는 충고만 돌아왔다”고 했다. 또 “취업취약계층 분들이 적절한 기회만 있으면 직무 교육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에 창업을 결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언제 보람을 느꼈냐’고 묻자 윤 대표는 “경력단절 여성들이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 불리다 회사에 들어와 이름을 찾게 돼 감사하다’고 할 때와 발달장애인 직원 어머니가 ‘우리 아이가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기적’이라는 편지를 보내왔을 때”라고 했다. 또 SW 프로그래밍 멘토링을 해준 탈북자 청년이 직장을 잡고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도 “희열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윤 대표는 “영화 한 편 볼 시간에 만나 멘토링을 해주고 관심을 줬을 뿐인데 인생이 바뀌는 모습을 봤다”며 “제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 “장애인 채용해도 생산성 안 떨어져”
데이터 라벨링 작업의 경우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이 많은데, 발달장애인은 일반 근로자보다 더 나은 집중력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다만 처음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 직원이 잘 어우러지진 못했다. 발달장애가 있는 직원이 첫 출근 날 계단에 누워 있거나 소리를 질러 다른 직원들이 힘들어하기도 했다.

장애가 있는 이들이 적응하기까지는 사회복지사들이 큰 도움을 줬다. 윤 대표는 “직장에서 삼가야 하는 행동을 룰로 정하고 사회복지사 면담을 진행하며 장애가 있는 직원들이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며 “지금은 오히려 너무 규칙을 잘 지켜서 직원들이 쓰레기 하나 잘못 버릴 수 없다”며 웃었다.

윤 대표는 장애인 근로자를 많이 고용하면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전체 인적자원 관리 비용은 일반 근로자를 채용할 때보다 적게 든다고도 밝혔다. 윤 대표는 “같은 질문을 투자자들에게 많이 받았다”며 “장애인 근로자의 경우 초기에 들어가는 훈련 비용은 많다고 볼 수 있지만 익숙해지면 퇴사율이 현격하게 낮아 결과적으로 인적자원 관리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고 말했다.

윤 대표의 꿈은 미래 세대에게 더 좋은 근로 환경과 공정한 사회를 물려주는 것이다. 그 꿈에 부응하듯 테스트웍스는 지난해 11월 SK그룹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기업을 키우기 위한 ‘임팩트 유니콘’ 기업에 선정돼 투자, 홍보 등을 지원받게 됐다. 윤 대표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며 경제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능력 있는 후배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들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팩트 유니콘 사업을 운영하는 행복나래 조민영 본부장은 “앞으로도 혁신적 소셜벤처들의 성장을 도와 사회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테스트웍스#사회적 기업#임팩트 유니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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