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드세요” 알려주고 넘어지면 119 신고… “손주와 사는 기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9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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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이웃 울타리 안에서 돌봄받는 ‘치매안심마을’
치매 환자 돌보는 AI

“어르신, 좋은 아침입니다. 혈압약 드실 시간이에요. 꼭 챙겨 드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충남 당진시 치매노인센터는 2021년부터 지역 내 치매 노인들을 대상으로 인공지능(AI)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치매 노인이 사용하는 AI 스피커는 겉보기엔 보통 집에서 쓰는 AI 스피커와 비슷하지만 주인에게 먼저 말을 건다는 것이 다르다. 노인이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고,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면 ‘날이 많이 뜨거우니 되도록 밖에 나가지 말라’고 일러주기도 한다.

이처럼 치매 노인들을 돌보기 위해 정보기술(IT)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IT 기기들은 노인이 낙상하거나 다친 것을 감지해 조치를 취하거나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학습 도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 AI, 치매 노인의 말벗 겸 건강 지킴이

당진시에서 활용하는 AI 스피커는 노인들의 말동무가 돼 주며 적적함을 달래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좋다. 노인이 집을 나서며 “병원 다녀올게”라고 말하면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하고 답하는 식이다. 당진에 사는 이모 할아버지(90)는 “AI 스피커가 말을 걸어 주니 손자, 손녀와 함께 사는 기분이 들어 좋다”고 말했다.

AI 스피커의 기능 중 노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건 음성으로 원하는 노래를 검색해 재생하는 기능이다. 73세 김모 할머니는 “평생 TV에서 나오는 노래만 듣고 살았는데,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아무 때나 들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정윤숙 당진시 치매안심센터 주무관은 “처음엔 어르신들이 매달 300곡씩 들을 수 있게 지원했는데, ‘더 듣고 싶다’는 요구가 많아 재생 횟수를 무제한으로 늘렸다”고 했다.

AI 스피커는 노인이 위급 상황에 빠졌을 때 119에 신고하는 SOS 기능도 갖추고 있다. 노인이 낙상하거나 쓰러졌을 때 “살려줘”라고 말하면 24시간 운영되는 관제센터로 전달되고, 센터에서 노인에게 전화를 건다. 노인이 전화를 받지 못하거나 전화상으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즉시 119에 신고가 접수된다. AI 스피커를 개발·운용하는 SK텔레콤에 따르면 2019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SOS 호출은 6000건 넘게 발생했고, 이 중 500여 건은 실제로 119 출동으로 이어졌다.

● 스마트워치가 낙상 감지해 실시간 신고

전남 나주시 치매안심센터와 한양대 생존신호정보연구센터는 스마트워치를 활용한 노인 안전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지난해 치매 고위험군 노인 80명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는데, 착용한 노인이 낙상 사고를 당하면 이를 자동으로 감지해 관제센터와 자녀에게 알림을 보낸다. 산소포화도와 심박수도 실시간으로 측정해 건강 이상 신호가 감지되면 알림을 보낸다. 아직은 시범 단계지만 응급상황 발생 시 경찰과 소방에 자동으로 신고를 접수시키는 시스템도 준비하고 있다.

치매 노인의 인지 능력 개선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도 IT가 활용되고 있다. 광주 동구 치매안심센터는 기존에 사용하던 책 대신 태블릿PC를 활용해 인지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들이 집에서 태블릿PC를 가지고 틀린 그림 찾기, 시계 보고 시간 맞히기 등의 퀴즈를 푸는 형태다.

광주 동구 치매안심센터가 사후평가를 해 보니 3개월간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치매 노인들의 인지선별검사(CIST) 결과가 평균 14.3점에서 16.7점으로 높아졌다. 이 센터 정소희 주무관은 “태블릿PC를 활용하면 글이 아닌 음성과 그림으로 안내가 나오니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약#119 신고#치매안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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