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척척’ 초중고생, 문서작성은 ‘쩔쩔’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스마트폰-태블릿 사용 능숙해도
데스크톱 활용한 작업은 어려워해
“컴퓨터 활용 능력 교육시간 늘려야”

“우리 애가 코딩은 할 줄 아는데 한컴오피스나 MS오피스로 문서를 작성할 줄은 모르더라고요.”

5일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주부 김현수 씨(42)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학교 과제를 제출해야 한다’면서 한컴오피스 사용법을 물어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온라인에 익숙한 세대라 한컴오피스를 못 쓸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당장 숙제를 못 해갈 정도라 학원이라도 보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2000년대에 태어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전자기기 사용에 익숙한 초중고교생 중에 정작 문서 작성 프로그램 사용을 어려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딩 세대’의 역설적인 모습이다.

● 코딩은 능숙, 문서 작업은 쩔쩔
경기 용인시의 한 초등학교 5학년 담임으로 재직 중인 정모 씨는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해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숙제를 냈더니 한 학생이 컴퓨터 메모장으로 작성한 내용을 카카오톡으로 보냈다”며 “이유를 물어보니 ‘한글로 작성해 낸 게 맞지 않느냐’고 되물어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한글 프로그램’을 ‘한글’로 받아들인 것이다. 정 씨는 “새 학기에는 먼저 한컴오피스 사용법을 숙지시킨 후 과제를 내줘야 할지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경기 안양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지난해 6학년 담임교사를 맡았던 김모 씨는 “MS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발표 자료를 준비해 오라고 했더니 일부 학생이 종이에 사인펜과 색연필로 내용을 적어 와 당황했다”며 “영상 제작이나 코딩을 척척 해치우는 학생들이 기본적 문서 작업을 못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도 “학생들이 스마트폰, 태블릿PC 같은 모바일 기기는 능숙하게 사용하는데 오히려 데스크톱이나 노트북PC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PC 바탕화면에 새 폴더 만들기, 인터넷 브라우저 사용 등 기초적인 사용법도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 “컴퓨터 활용 교육 늘려야”
‘코딩 열풍’이 불면서 한컴오피스와 MS오피스 활용 능력시험(ITQ) 청소년 응시자 수도 급감하는 추세다. 2018년 22만2268명에 달했던 20세 미만 응시자 수는 지난해 13만6536명으로 40%가량 줄었다.

이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생산성본부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코딩 자격시험으로 응시자가 옮겨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문제는 대학과 회사, 공공기관 등에선 여전히 한컴오피스와 MS오피스를 이용해 보고서 등을 작성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학부모 중에선 최근 문서 작성을 가르치는 학원에 자녀를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금천구에 거주하는 김현영 씨(39·여)는 “최근 중학교 1학년 자녀와 컴퓨터 문서 작성 학원 상담을 받고 왔다”며 “지금이라도 가르치지 않으면 성인이 된 후에도 제대로 문서를 작성하지 못할까 싶어 걱정”이라고 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관련 학원을 운영하는 A 원장도 “최근 학부모 문의가 많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문서작업반을 새로 만들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기본적인 컴퓨터 활용 능력을 가르치는 교육 과정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현철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2008년 정규 교육과정에서 정보통신기술(ICT) 활용 능력 교육이 사라지고 지금은 코딩 등 소프트웨어 기초 소양을 중심으로 가르치게 돼 있다”며 “방과 후 과정에서 컴퓨터 활용 능력에 대한 교육 수요가 매우 높게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해 관련 교육 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초중고생#코딩#문서 작업#컴퓨터 활용 교육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