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10월 어느날 밤…” AI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만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27일 14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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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어떻게 ‘위안부’로 끌려가게 되셨나요?”

“1943년 10월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밤에 일본 군인이 여자아이와 같이 와서 저를 창문으로 손짓하며 불러내서 끌고 갔습니다. 대만 신주 가미카제로 가서 있었습니다.”

27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밈’ 전시회장. 꽃이 달린 갈색 원피스를 곱게 차려 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4)가 또렷하게 대답했다. 82인치 모니터 속에서.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와 중앙대 HK+접경인문학연구단은 이날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증언을 만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인터랙티브 증언 콘텐츠 활용 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의 핵심 콘텐츠는 관람객이 ‘위안부’ 피해자인 이 할머니, 이옥선 할머니(95)와 대화할 수 있는 체험이다.

27일 서울 종로구의 전시회장 ‘갤러리밈’에서 열린 ‘증언을 만나다’ 전시회에서 모니터 화면 속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시민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 콘텐츠는 연구소와 서강대 김주섭 교수팀이 3년에 걸쳐 공동 개발했다. 이들은 2019년 10월 나흘 동안 두 할머니에게 피해 당시 상황 등에 대한 증언을 받았다. 1000여 개의 질문에 대해 할머니들이 답변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고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시켜 관람객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었다.

주최 측은 관람객이 할머니를 실제로 만나는 듯한 경험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더 깊게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한결 책임 큐레이터는 "일반 시민들이 '위안부' 피해자와 직접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슬프게도 피해자들은 언젠가 세상을 떠난다"며 "관람객은 피해자와 대화하면서 그들의 아픔과 기억을 함께 체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람객들은 무엇보다 영상을 통해 할머니들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용수 할머니에게 증언을 할 때 어떤 기분이냐고 묻자 동요하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할머니, 증언을 할 때 어떤 기분이세요?”

“이 이야기를 하면 피가 끓어요. 참 많이 울고 많이 그랬지만은 제가 맹세를 했어요. 혼자 앉아가지고. ‘용수야, 너 증언하면서 울지마라. 어? 자존심 상하게 왜 우노.’ 하지만 그 얘기를 하면 가슴이 무너져요. 죽지 않고 살아나오는 것만 해도 그런데 평생 그 때 일을 이렇게 얘기 할때마다 상처는 너무너무 커요. 그러면 그때 그게 되살아 나가지고. (고개를 저으며) 마음이 너무 괴로워요.”

‘위안부’ 피해 당시의 기억 뿐만 아니라 할머니들의 현재 생각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이용수 할머니에게 '일본은 할머니가 자발적으로 (위안소에) 가셨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묻자 “절대 아니었다. 분명히 밤에 와서 불러내 끌려간 역사의 산증인 이용수가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할머니에게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그는 “역사 교육관을 만들어서 위안부 문제를 상세하게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관람객이 직접 증언을 필사하는 체험 프로그램, 증언의 현장을 담은 그림과 영상도 함께 마련돼있다.

주최 측은 이번 전시의 목표를 '증언의 의의를 되새기는 것'이라고 밝혔다. 할머니들을 피해자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전시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위해 공개적으로 나선 '증언자'로서 기억하자는 이야기다.

이용수 할머니가 생각하는 증언의 의의는 무엇일까. 모니터 속 그에게 물었다.

"할머니의 증언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지나간 역사라 할까. 역사라는 말은 제 생명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안에 제 증언이 있습니다. 상세하고 명백한 이 증언, 이 증언이 있음으로써 여러분들이 (역사를) 아시게 되리라 믿습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제공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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