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건 제한해도 민생사건 보완수사는 가능해야… 사회적 약자 위한 의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7일 17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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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2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성진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2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올 1월 중국산 감시 장비를 국내산으로 속여 육군에 납품한 브로커를 수사하던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협력부 검사들은 경찰 송치 사건을 수사하던 중 새로운 범죄 단서를 포착했다. 수사 대상인 군 브로커가 육군 본부의 또 다른 사업에서도 중국산 저가 감시 장비를 국내 중소기업 생산 제품으로 속여 사업을 낙찰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었다. 검찰은 20여 회에 걸친 관련자 조사 등 대대적인 보완수사를 벌였다. 그 결과 경찰이 피해자로 송치한 업체 대표들에 대해 사실상 범죄에 가담한 공범이란 사실도 파악하고 핵심 피의자를 구속시켰다. 서울중앙지검은 27일 군을 속여 사업 대금 각 15~119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로 군수 업체 대표 A 씨 등 4명을 기소했다.》

더불어민주당이 27일 새벽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시킨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시행될 경우 이런 수사 사례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개정법은 검사가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사건과 동일한 범죄에 한해서만 보완수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라미’ 잡고 ‘거대 세력’ 놓쳐”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시킨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개정안에는 “검사가 경찰로부터 송치받은 사건에 관해 해당 사건과 동일한 범죄 사실 범위 내에서 수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대로라면 검사는 피의자의 또 다른 범죄에 대해서는 직접 수사할 수 없다. 검사가 불법 성착취물을 유포한 남성의 휴대전화에서 수천 건 넘는 피해 여성의 영상을 확보하더라도 이에 대해 직접 수사할 수 없고 경찰에 수사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송치된 피의자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아동 성폭력 범행 사실을 발견하더라도 이에 대해 직접 수사할 수 없다. 검사는 범행을 저지른 진범, 공범을 확인하더라도 직접 수사할 수 없다. “검사가 재차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하면 된다”는 반론에 대해 일선 검사들은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를 해도 제대로 된 수사로 이어지기 어렵고, 현실성 없는 대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검사는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를 하더라도 경찰이 즉시 응할지 알 수 없다”며 “그 사이에 증거나 공범은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검사도 “검사가 새로운 범죄 단서를 포착해 수사 요구 하더라도, 경찰은 별건이라며 사건을 받지않는다”고 했다. 한 평검사는 “며칠 전 전임 검사가 보완수사 요구했던 사건을 1년 3개월 만에 받았는데, 경찰은 요구 사항 중 1개만을 이행했고 ‘추가로 밝혀낼 수 없을 것 같으므로 수사 실익이 없다’는 이유를 달았다”고 했다.

“‘원영이’ ‘하은이’ 억울한 죽음 진실 못밝혀”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경찰관을 지휘해 사건의 진범을 찾아내는 ‘무학산 살인 사건’ 같은 사례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형 참사가 벌어진 뒤 검사와 경찰이 모두 수사권을 갖고 초동 수사부터 합동으로 대응할 수도 없다. 이에 앞서 창원지검 마산지청의 안희준 당시 부장검사는 2015년 무학산 정상 부근에서 50대 여성을 살해한 ‘무학산 살인사건’ 혐의로 약초꾼 A 씨를 체포해야 한다는 경찰의 영장 신청을 받았다.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A 씨의 무죄 주장에 주목한 안 부장검사는 경찰에 “피해자 유류품을 대검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로 보내 다시 감식하라”고 했다. 피해자 유류품에선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확인하지 못했던 진범의 유전자정보(DNA)가 확인됐다.

수원지검 평택지청의 강수산나 부장검사도 2016년 아동학대로 숨진 ‘원영이 사건’에서 경찰이 발견하지 못한 원영이의 시신을 발견했다. 검찰은 소아과 전문의 등의 자문을 거쳐 계모와 친부를 살인죄로 재판에 넘겼다. 경찰이 원영이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 등으로 계모와 친부에 대해 형량이 낮은 아동학대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한 사건이었다.

검사가 동일한 범죄에 대해서만 보완수사할 수 있도록 한 ‘독소 조항’을 개정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후곤 대구지검장은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는 ‘동일 사건’ 범위 외에는 수사를 못하게 하라. 국회에서 기준을 세워달라”며 “하지만 (민생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권한을 규정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조항엔 손을 대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김 검사장은 “아동학대 사건을 수사하다가 성폭력이 확인되면, 스토킹범 휴대전화에서 아동 성착취물이 발견되면, 보이스피싱 수금책을 수사하다가 주범이 발견되면 검찰이 수사하게 해달라”며 “민생 사건에 대한 수사는 무소불위 권한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사회 약자를 위해 당연히 행사해야 할 검찰의 의무”라고 호소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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