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은 될대로 되라’는 검수완박 중재안, 제발 멈추라”…장애·아동 변호사의 절규[법조 Zoom In]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4일 20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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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이제 장애인, 아동 등 사회적 약자인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고소해봤자 엄청 기다리고 경찰서에 불려 다니기만 하다가 가해자는 처벌도 못 받겠구나’ ‘범죄 피해를 신고해도 아무 도움도 못 받겠구나’라고 생각할까봐 두렵다.”

최전선에서 장애인, 아동, 성폭력 피해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온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40·사법연수원 41기·사진)는 24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검찰 수사권의 단계적 폐지 등을 담은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앞서 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강행하자 박 의장이 중재안을 마련했지만 법조계에서는 “서민을 위한 법안이 아니라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이 검찰 수사를 피해가기 위한 ‘딜’”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동아일보는 중재안이 범죄 피해자들과 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김 변호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회에서 마련한 ‘검수완박’ 중재안을 한 마디로 평가하면.

“이걸 중재안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그건 지나친 칭찬이다. 야합이다. 중재안은 양쪽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에 대해 서로 양보하고 더 나은 방안으로 조정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 나온 자칭 ‘중재안’은 기존에 검수완박 법안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논리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국민들의 입장에선 국회의원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거래를 한 것이라고 보여질 수밖에 없다. 국가의 형사사법체계를 특정인의 이익을 위한 거래로 처리하다니. 어이가 없다.”

―중재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공직자 범죄, 선거 범죄에 대한 검찰 직접수사권을 삭제한 것인가.

“내가 변호하는 아동, 장애인 등 약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나온 중재안은 1%도 안 되는 권력형 범죄만 ‘딜’의 대상이고, 99%의 서민 사건, 민생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통제 방안은 전무하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립하고 6대(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 참사) 범죄에 대한 검찰 직접수사권을 단계적으로 없앤 것은 사실 ‘기득권들끼리 이익을 나눠 먹은 것’이라서 크게 할 말도 없다.”

―그럼 일반적인 서민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문제인가.

“사실상 검찰이 보완수사를 하지 못하게 해놓은 것. 이제 피해자는 ‘가해자를 고소해봤자 엄청 기다리고 경찰서에 불려 다니기만 하다가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도 못 받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될까봐 두렵다. 국회에서 발표한 중재안 합의문에는 ‘검찰의 시정조치 요구사건과 고소인이 이의를 제기한 사건 등에 대해서도 사건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속에서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게 수사인가. 경찰이 검찰에 송치한 사건의 혐의와 단일성, 동일성이 없는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범죄의 동일성이 없으면 보완수사를 못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동일성은 굉장히 모호하고 방대한 개념이다. 경찰이 가해자를 A라는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는데 그와 비슷하지만 살짝 다른 B라는 혐의가 발견되고, 이게 더 중대한 문제라면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것인가? 범죄사실의 동일성의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판단해주는가? 법원에서 판단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내가 가해자 또는 피의자의 변호인이라면 검찰에 제출하는 모든 의견서에 ‘지금 수사하시고 있는 혐의는 경찰이 송치한 혐의와는 동일성이 없는 혐의이니 당장 수사를 멈추라’고 쓸 것이다. ‘야합’ 중재안은 피의자가 빠져나갈 구멍만 만들어줬다.

―예를 들어 설명해 달라.

”내가 실제로 맡았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가상의 사례를 설명하겠다. 지적 장애를 가진 여성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방임이나 친척의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성에 대한 가치관이 없는 상태에서 경제적 형편이 어렵고 일자리도 없어서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게 됐다. 그런데 이 여성의 직업을 알게 된 한 남성이 여성이 업소에서 일하지 않을 때 이 여성을 강간하고 폭행했다. 그런데 경찰은 ‘성매매 여성이 어떻게 강간을 당하나’라며 감금, 상해 혐의로만 입건했다. 그런데 수사 기록을 읽어보면 이 여성이 강간을 당한 것이 명백했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강간 혐의를 추가할 수 없다. 상해·감금과 강간은 전혀 다른 범죄 혐의이므로 단일성이나 동일성이 없는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걸 어떤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겠나. 지적 장애를 가진 여성이 폭행과 협박이 동반한 강간에 대한 판례와 법리를 이해하고 경찰에 이야기할 수 있겠나.“

―경찰이 가해자를 불송치해도 피해자가 이의신청을 내면 되지 않나.

”국회의원들이 순진한 생각으로 ‘피해자가 억울하면 이의신청을 낼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게 바로 기득권과 기득권이 아닌 사람들의 인식의 차이다. 경찰이 가해자나 피의자를 불송치 하기로 결정하면 피해자는 검찰에 이의신청을 내서 검찰의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긴 하다.“

―이의신청 자체가 어렵다는 것인가.

”이의신청은 이미 죽은 제도다. 이의신청을 하려면 불송치 결정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야 한다. 불송치 개념을 이해하고, 이의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피해자가 몇이나 될 것 같나. 동사무소 가서 주민등록등본 발급 받는 간단한 절차가 아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법리와 판례를 써가며 경찰의 불송치 결정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신청서를 내야 한다. 대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취약계층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변호사를 선임할 돈이 없으면 제대로 된 이의신청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피해자들이 이의신청을 많이 활용하나.

”지난해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 중 5.6%의 사건 피해자들만이 이의신청을 냈다. 그 5.6%의 이의신청 사건 중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1%밖에 되지 않는다. 이의신청은 기간 제한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활용도가 낮다. 살면서 가해자에게 ‘아프다. 힘들다. 그만하라’는 말도 못하고 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다. 경찰에서, 국가 기관에서 ‘불송치하겠다’고 결정했는데 여기에 조목조목 반박할 수 있는 피해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든데 심한 일을 당해도 경찰에 제대로 이야기해볼 생각조차 못하는 이들이 많다. 여기에다 대고 ‘억울하면 알아서 신고하고 이의신청 하겠지’라는 건 지나치게 기득권 중심적인 생각이다.“

―그래도 어렵사리 이의신청을 했다면 어떻게 되나.

”이의신청을 해서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 뭐하나. 중재안 때문에 검찰은 경찰이 수사한 혐의와 동일성이 없는 혐의는 수사하지도 못한다. 피해자가 어려운 형편에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이의신청을 내도 위의 사례처럼 강간 같은 중대한 혐의에 대한 수사를 못하는데 무슨 소용인가.“

―사건 처리는 지금보다 더 오래 걸리나.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없앴기 때문에 피해자는 범죄 피해를 신고해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게 될 것이다. 사건 관리 체계가 문제다. 지금은 사건 처리 기한을 관리하는 제도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예전에는 검찰에 고소장을 내면 검찰이 수사지휘서를 붙여서 경찰에 사건을 내려보냈다. 수사지휘서가 붙는다는 건 그때부터 기한 관리에 들어간다는 거다. 통제가 들어간다. 수사지휘서를 내려보냈는데 경찰이 4개월 동안 아무것도 한 게 없다면 검찰에서도 통제를 하기 시작한다. 검찰의 ‘레이더망’에 걸려 있으니 사건 처리에 속도를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피해자가 경찰에 가해자를 고소하면 경찰 수사 단계에 들어가는 시간이 더 늘어나게 생겼다. 이제는 경찰이 사건이 법원에서 유죄를 받을 수 있는 사건인지 직접 법률 판단도 해야되기 때문이다. 법률 판단보다는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조사하는 것에 집중하던 경찰이 그동안 주로 하지는 않았던 법률 판단을 떠맡게 되어 시간이 더 걸린다. 일선 경찰에서는 벌써 경찰서에서 근무하지 않고 파출소나 지구대, 정책 부서에 근무해야 한다는 말이 돈다. 수사에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고 업무도 고되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총평을 하자면.

”피해자는 대응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국회 중재안은 ‘서민들은 될 대로 되라’는 법안이다. 국가의 형사 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없어지면 치안 문제로 연결된다. 피해자들, 서민들은 각자도생 하라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국회에 ‘제발 지금이라도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피해자들이 ‘각자도생’에 내몰리기 전에 제도를 바로 잡아야 한다. 이번에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법안이 아니다. 21대 국회는 아직도 2년이나 남아 있다. 국민의힘도 합의했다고 하니 국민과 전문가, 일선 수사기관의 의견을 경청하고 천천히 법안을 보완해야 한다. 정 지금 법안을 처리해야겠다면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복원시켜야 한다. 검찰의 직접수사권보다도 수사지휘권을 보장하는 것이 시급하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증발’시키고 갑자기 경찰에 수사 종결권을 준 것이 최대 패착이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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