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고시원서… 세밑한파 속 잇단 ‘외로운 죽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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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수급 1인가구 고독사 이어져… 성탄절 숨진 뒤 사흘만에 발견도
지자체서 ‘고위험 가구’ 살피지만 전화 없거나 연락 안돼 관리 어려움
코로나로 비대면 모니터링 확대돼 주변과 교류 기회 줄고 단절 심화
“창문 통해 안부라도 물어야” 지적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주택가.

좁은 골목을 15분가량 걸어 도착한 박강훈(가명) 씨의 집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현관문 너머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이틀 전인 28일 오후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사회복지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집 안에서 싸늘한 박 씨의 주검을 발견했다.

불이 켜진 전기밥솥에는 먹을 사람이 없는 밥이 담겨 있었다. 보온 시간으로 볼 때 박 씨는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 마지막 식사를 한 것으로 추정됐다. 범죄 정황은 없었다. 경찰은 검안의 소견을 바탕으로 박 씨가 25일경 급성 심장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박 씨의 유족을 수소문하고 있지만 30일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박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였고, 40대였다.

○ 한파 속 홀로 숨진 ‘고위험 가구’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기초생활수급자의 안타깝고 외로운 죽음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연말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거리 두기가 강조되면서 주변과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홀로 임종을 하고 뒤늦게 주검으로 발견되는 고독사 사례가 적지 않은 것.

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고시원 공용 화장실에서는 80대 고시원 주민 김장용(가명) 씨가 숨져 있는 것을 직원이 발견했다. 전날부터 화장실 문이 계속 잠겨 있었던 것으로 볼 때 김 씨는 27일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고시원 측에 따르면 김 씨는 2016년부터 이 고시원에 월세 20만 원을 내고 혼자 살았다. 다른 가족과 교류도 거의 없었다고 해 경찰이 김 씨의 시신을 수습했다. 종로구가 김 씨의 ‘무연고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이 고시원에서는 24일에도 혼자 살던 70대 주민 1명이 방 안에서 혼자 숨을 거뒀다. 2011년부터 거주해온 70대 강모 씨였다. 연락을 받고 찾아온 자녀가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렀다. 김 씨와 강 씨도 기초생활수급자였다.

○ 코로나19로 사회적 단절 심화
고독사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서 더 악화되고 있다. 감염 확산을 우려해 일부 복지 서비스가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된 탓이다.

서울시는 기초생활수급자 중에서도 지병이 있는 1인 가구 등을 고독사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가구’로 분류해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고위험 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하던 대면 모니터링을 비대면 모니터링과 병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고위험 가구는 휴대전화가 없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아 관리에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28일 숨진 채 발견된 김 씨도 이달에는 지자체 연락을 받지 못했다. 지자체 복지 담당자는 휴대전화가 있는 고시원 직원을 통해 김 씨의 건강상태 등을 간접적으로만 확인했다.

‘고위험 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되던 교류 프로그램도 사실상 중단됐다. 종로구 주민센터 관계자는 “문화 체험과 한식 조리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었는데 코로나19로 2년째 멈춘 상황”이라며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교류를 활발하게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고독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감염병 사태를 핑계로 우리 복지 시스템이 가진 문제점을 덮어버리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안부를 확인하거나, 현관문만 열고 1, 2m가량 떨어져 잠시 대화하는 등 비대면 관리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


유채연 기자 ycy@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외로운 죽음#1인 가구#고독사#고독사 고위험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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