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 투사회보체’ 디지털 글꼴 21일 공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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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광주참상 알린 유인물
부산-대구 등 전국서 통참해 눈길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의 참상을 알린 유인물 투사회보를 만든 박용준 열사(1956∼1980)의 디지털 글꼴이 공개된다. 순수한 시민 모금으로 박용준 투사회보체(사진)를 디지털 글꼴로 만들기 위해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동참했다.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는 21일 박용준 투사회보체 글꼴을 공개한다. 박용준 투사회보체는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5·18기념재단, 들불열사기념사업회, 광주YWCA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디지털 글꼴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금을 모금하는 기간은 4월 9일부터 이달 27일까지다. 20일까지 시민 200명이 참여해 900만여 원이 모였다. 특히 기부자 절반은 부산과 대구, 경기 안산 등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었다. 부산 시민은 “광주에 빚이 있어 후원하게 됐다”고 했고, 대구 시민은 “후대 사람들이 5·18을 기억해주면 좋겠다”며 모금에 참여했다. 3만 원 이상 기부자에게는 박용준 투사회보체로 이름을 새긴 도장을 선물로 준다.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는 21일 오전 10시 반 5·18기념재단에서 박용준 열사 투사회보체 글꼴 발표회를 갖는다. 5·18기념재단 제공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는 21일 오전 10시 반 5·18기념재단에서 박용준 열사 투사회보체 글꼴 발표회를 갖는다. 5·18기념재단 제공
디지털 글꼴 제작은 대구 남구에 있는 다온커뮤니케이션이 맡았다. 이 업체는 박용준 투사회보체 제작비용 절반을 기부했다, 김구 안중근 윤봉길 윤동주 한용운 선생의 독립서체, 2·28민주화운동 기념 폰트 2·28서체, 고려대 홍보 만화 등을 제작했다.

황석현 다온커뮤니케이션 대표(45)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관심이 많아 평소 5·18기념서체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21일 광주를 방문한다.

고아였던 박 열사는 광주영신원과 무등육아원 등 복지시설에서 성장했다. 1960년대 후반 중학교를 졸업할 때 1400원을 내지 못해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야간고등학교 재학 시절 구두닦이와 인쇄공 등으로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1973년 광주YWCA 신협에 입사한 뒤 1978년 광주지역의 첫 노동야학인 들불야학에 참여했다. 인쇄 기술과 글씨체가 좋았던 박 열사는 5·18 당시 야학교사, 학생들과 함께 투사회보를 제작해 배포했다. 투사회보는 1980년 5월 21일부터 26일까지 10회 제작됐다. 각 호마다 1만∼3만 장을 발행했다.

투사회보는 신군부의 검열로 언론이 광주의 참상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고 있을 때 광주의 진실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박 열사는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시작된 1980년 5월 27일 새벽 광주 동구 대의동 광주YWCA에서 숨졌다.

백희정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 상임이사는 “전국에서 많은 시민들이 투사회보체 제작을 후원해 5·18의 전국화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5·18민주화운동#투사회보#디지털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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