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계엄군, 자신이 쏜 총에 숨진 희생자 유가족 앞 사죄

  • 뉴시스
  • 입력 2021년 3월 17일 13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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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7공수부대원으로 진압 투입…숨진 희생자 사살 고백
유족 만나 큰 절하며 "40여 년간 죄책감 시달렸다" 울먹여

5·18민주화운동 당시 진압작전에 참여했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에 의해 숨진 희생자의 유족을 만나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17일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진상조사위)에 따르면, 항쟁 당시 특전사 7공수 특전여단 부대원이었던 A씨가 지난 16일 오후 3시께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 희생자 유족들과 만났다.

참배에 앞서 A씨는 국립 5·18민주묘지 민주의 문 접견실에서 자신의 총격으로 희생당한 故 박병현씨의 친형 등 유가족을 만나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A씨는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 사과가 또 다른 아픔을 줄 것 같아 망설였다”며 유가족에게 큰절을 올렸다.

또 “40여 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제라도 유가족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울먹였다.

A씨의 사과에 고 박씨의 형인 박종수(73)씨는 “늦은 사과라도 고맙다.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고 생각하겠다”며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 편히 살아달라”고 말했다.

이어 A씨를 위로하듯 포옹했다.

이번 만남은 당시 진압에 참여한 계엄군 A씨가 자신의 가해 행위를 고백하고 유족에게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진상조사위에 전달했고, 유족도 가해자의 사과를 수용하면서 마련됐다.

고 박씨는 1980년 5월23일 농사일을 도우러 고향인 보성으로 가고자 광주 남구 노대동 노대남제 저수지 부근을 지나던 중 순찰 중이던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 소속의 A씨에 의해 사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총격 당시 상황에 대해 “1개 중대 병력이 광주시 외곽 차단의 목적으로 정찰 등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며 “화순 방향으로 걸어가던 젊은 남자 2명이 공수부대원을 보고 도망을 쳤다. 정지를 요구했으나 겁에 질린 채 달아나길래 무의식적으로 사격을 했다”고 진술했다.

또 “숨진 박씨의 사망 현장 주변에선 총기 등 위협이 될 만한 물건이 전혀 없었다”며 “대원들에게 저항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사실도 없다.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가던 상황이었다”고 고백했다.

해당 사건은 2001년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당시에도 A씨는 “노대동 저수지 부근에서 동료 부대원 3명과 함께 민간인 4명에 대해 조준사격을 해 그 중 한 명을 사살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진상조사위는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조사 자료를 넘겨 받아 추가 조사를 벌여 A씨의 구체적인 진술 등을 확인했다.

진상조사위는 그동안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계엄군들이 자신들이 목격한 사건들을 증언한 경우는 많이 있었으나, 가해자가 자신이 직접 발포해 특정인을 숨지게 했다며 유족을 만나 사과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진상조사위는 계엄군과 희생자(유가족) 간 상호 의사가 있는 경우, 적극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진상조사위의 설립 취지 중 하나인 사과와 용서를 통한 불행한 과거사 치유와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차원에서다.

송선태 5·18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이제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당시 작전에 동원된 계엄군들이 당당히 증언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광주=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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