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민심 못 읽는 국토부장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한 농부가 검정소와 누렁소 두 마리로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길 가던 이가 이를 보고 “어느 소가 밭을 더 잘 가느냐?”고 묻자 농부는 일을 멈추고 가까이 다가와 귀엣말로 “누렁소가 더 잘하오”라고 말합니다. 큰 소리로 대답해도 될 것을 굳이 가까이 다가온 연유를 묻자, 농부는 “어느 한쪽이 더 잘한다고 하면 나머지 한쪽 소는 기분 나빠할 것 아니오.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오”라고 답했습니다. 조선 시대 황희 정승(1363∼1452)의 일화입니다. 큰 깨달음을 얻은 황희 정승은 언행을 조심하게 됐다고 합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56·사진)이 어설프게 내뱉은 말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3기 신도시 후보지 ‘땅 투기’로 국민들의 원성이 들끓는 가운데 LH 사장 출신인 변 장관이 해당 직원들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겁니다.

변 장관이 “따지고 보면 불법적이지 않다”거나 “LH 직원들이 신도시 지정을 알고 투자한 것은 아닐 것이다. 보상을 많이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더 악화됐습니다. 장관이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할망정 파인 상처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질책이 뒤따랐습니다. 변 장관은 뒤늦게 자신의 불찰에 대해 사과했으나 논란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지난해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이 수급 불균형과 맞물리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런 상황에 편승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벼락 거지’라는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자산 가격의 폭등을 따라잡지 못해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벼락 거지 담론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서글픈 단면입니다.

이런 가운데 LH 임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이 발생했으니 민심은 들끓고 있습니다. 정부와 LH가 앞에선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겠다며 각종 규제를 쏟아내 놓고, 뒤에선 꼼수를 부려 잇속을 챙기려 했으니 국민들의 배신감과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LH를 향한 분노는 정부로 번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전 직원의 신도시 토지 거래 내역 전수조사를 주문했습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가장 공정하고 엄정해야 할 공공기관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참담한 심정”이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변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여당 내부에서도 변 장관을 성토하는 분위기입니다. 변 장관은 LH 사장으로 재직하기 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시절 함부로 내뱉은 말이 외부로 알려져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른 바 있습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에 대해 “걔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또 “못사는 사람들은 밥을 집에서 해 먹지, 사 먹느냐”는 발언도 했습니다. 말에 품격이 없을뿐더러 인간에 대한 거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소에게도 배려하는 마음을 갖춘 농부처럼, 매사에 언행을 조심했던 황희 정승처럼, 우리의 재상들이 국민을 섬기는 마음을 갖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요.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민심#국토부장관#변창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