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같은 피해자들 걱정에 밤샘 마다않고 수사하다…

이소연 기자 입력 2021-01-14 03:00수정 2021-01-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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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 대상 몰카 사건 파헤치던 관악경찰서 박성수 여청강력팀장
생일날 야근 후 집앞 승강기서 숨져
“딸 생각나 절대 못 봐준다” 열의… 동료들 “평소 힘든 수사 앞장서”
“우리 딸이 생각나서 이런 놈들 더는 못 봐주겠다.”

서울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강력팀장 박성수 경위(50·사진)는 평상시 동료 경찰들에게 이 말을 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가족과 사회를 위해서 성범죄자들을 적극 검거해야 한단 의지였다. 생일이던 11일에도 가족과의 저녁식사까지 포기한 채 성범죄 수사에 매진했다. 하지만 늦은 밤 집으로 올라가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쓰러졌고, 끝내 숨을 거뒀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야근 뒤 퇴근하던 박 경위가 11일 오후 11시 28분경 경기 광명에 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박 경위가 생일 식사까지 미뤄두고 수사하던 사건은 ‘중고교생 불법촬영’ 사건이었다. 관악서는 지난해 12월 말 여성들의 치마 속을 불법촬영한 혐의로 피의자 A 씨를 검거했다. A 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해 본 결과, 100명도 넘는 여성을 촬영한 사진들이 드러났다. 심지어 90여 명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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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경위는 11일에도 동료 경찰들에게 “피해자 상당수가 내 딸과 비슷한 또래인 중학생들”이라며 “범죄 현장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해 꼭 ‘이놈’을 기소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수많은 피해자를 특정하기 위해 박 경위는 이날 밤늦게까지 CCTV 영상들을 들여다봤다. 근무시간을 넘겨 야근까지 하다가 오후 10시경에야 사무실을 나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동료들은 “아까운 경찰을 잃었다”고 탄식했다. 박 경위는 “어려운 사건은 내게 맡겨 달라”고 자청할 정도로 열의가 넘쳤다고 한다. 팀 동료인 김범규 경사는 “다음 주 피의자 조사 일정을 잡고 여죄를 검토 중이었는데 변고를 당했다”면서 “평소 ‘우리가 놓치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온다’며 늘 수사에 최선을 다했다”며 슬퍼했다.

2019년 5월 귀가하던 여성을 뒤쫓아 집에 침입하려 한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의 피의자를 찾아낸 것도 박 경위였다. 당시 그는 사건이 발생했던 관악구 신림동 주택가 일대의 CCTV 영상 100여 개를 분석해 피의자 거주지를 알아냈다. 포위망을 좁혀 집 앞에서 잠복 수사를 벌인 끝에 피의자의 자수를 이끌어냈다. 박 경위는 이 사건의 피의자를 검거한 공로로 경찰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박 경위는 올 1월 초 지하철에서 와이파이로 콘텐츠를 공유하는 에어드롭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에게 음란 사진을 전송한 사건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고인은 특전사와 119구조대를 거쳐 2003년 경찰에 입문했다. 나라와 사회를 지키는 일에 일평생을 바쳐온 셈이다. “범인을 잡으면 사람을 구한다”고 믿었다는 그는 언제나 경찰 제복을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가리기 위해 부검을 의뢰한 상태이며, 고인에 대해서는 순직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빈소는 경기 광명성애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6시 30분. 02-2684-4444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성범죄자 수사#박성수 팀장#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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