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회의, ‘판사사찰 대응’ 안건 부결…“정치적 이용 경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7일 21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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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대표들의 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가 7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사유 중 하나인 이른바 ‘재판부 사찰 문건’ 의혹을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했지만 집단적인 의견을 내지 않기로 결론 냈다.

전국의 각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을 대표하는 판사 125명으로 구성된 법관 대표들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온라인으로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에는 법관 대표 125명 중 120명이 참석했다.

재판부 사찰 의혹은 애초 안건에 포함돼 있지 않았지만 회의 당일 10명 이상의 법관이 “문건에 반대한다”는 안건을 올리는 데 동의해 상정됐다. 하지만 표결 결과 120명 중 과반수에 훨씬 못 미치는 40명에 가까운 법관만 가결 의사를 밝히고, 나머지 80여 명의 법관이 반대해 최종 부결됐다.

○ 수위 낮춘 안건도 부결… 다수 “정치적 이용 경계”

해당 안건은 제주지법의 법관 대표인 장창국 부장판사가 발의했다. 장 부장판사는 “(재판부 사찰 문건은) 삼권분립과 절차적 정의에 위배하여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려는 일체의 시도에 단호히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 안건에 10명 이상의 판사가 동의해 안건으로 상정됐다.

장 부장판사가 당초 법원 내부망에 “법원행정처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안건을 올렸지만 두 차례 수정을 거쳐 표현 수위를 낮췄다.

상정된 안건에 대한 법관 대표들의 토론 과정에서 “법관 정보 수집 주체(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가 부적절하며 공판 절차와 무관하게 다른 절차에서 수집된 비공개 자료를 다루고 있는 점에서 법관의 신분상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는 찬성 의견이 일부 나왔다. 하지만 다수의 법관 대표들로부터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결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특히 “서울행정법원에서 재판이 계속 중이고, 앞으로 추가로 계속될 가능성이 있는 사안으로서 재판의 독립을 위해 전국법관대표회의 차원의 입장 표명은 신중해야 한다”는 반발이 거셌다. 윤 총장에 대한 소송은 현재 직무배제를 일시적으로 정지시킨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 대한 결론이 나왔을 뿐 직무배제의 위법성을 다루는 본안 소송은 서울행정법원이 심리하고 있다.

이에 일부 법관 대표들은 “검찰의 법관 정보 수집 및 보고가 법관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지양되어야 한다”는 등의 수정안과 법관대표회의의 분과위원회에 회부해 논의하는 수정안 등을 두고도 추가로 표결을 했지만 모두 부결됐다.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안건도 나왔지만 이 역시 부결됐다고 한다.

법원 내부에서는 “현장의 의견 수렴 없이 안건 상정이 강행됐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지은희 수원지법 판사는 7일 법원 내부망에 “안건 상정 여부와 어떤 안이 좋을지에 대해 각급 법원에서 의견조회를 실시했고, 대다수 법원에서 신중하자는 의견이 많았음에도 수정을 통해 안건 상정이 강행됐다고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 전체 법관 대표 30%는 사찰 문건에 반대 의견

전체 판사가 집단 성명을 내지는 않았지만 약 30%의 법관 대표들이 사찰 문건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어서 향후 논란이 계속될 수 있다. 이 때문에 10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열릴 예정인 윤 총장에 대한 법무부 징계위원회에 미칠 영향을 예단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 총장 측 법률대리인 이완규 변호사는 미국 연방판사 100여 명의 학력과 경력, 정치활동, 세평 등의 자료가 담긴 책 내용의 일부를 공개했다. 이 변호사는 “판사의 정보가 외국에서는 소송을 위해 사람들에게 팔릴 정도”라면서 “이런 내용에 비하면 재판부 분석 문건에 적은 것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며 재판부 사찰 의혹을 반박했다.

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고도예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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